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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영당은 민족사관을 정립한 사학자이며 언론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1978년에 건립되어, 1981년 이곳에 그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단재영당(丹齋影堂) 혹은 단재영각(丹齋影閣)으로 불린다.
신채호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청주의 옛 집터였던 사당 뒤쪽에는 그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호석이 없는 아담한 봉분 앞에는 한용운(韓容雲), 오세창(吳世昌), 신백우(申伯雨) 등이 세운 묘표(墓表)와 상석(床石)을 놓았다. 상석 오른쪽에는 1972년 세운 사적비가 있고 봉분의 정면 중앙에는 명등석(明燈石) 1기,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 1쌍이 서 있다.
신채호 선생은 평생을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다 1929년 체포되어 1936년 2월 21일 중국의 뤼순[旅順]감옥에서 옥사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主筆)로 활약하면서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청주시의『단재영당』은 신채호 선생의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기 위한 중요한 현충시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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