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만 칼럼
[김수종 칼럼]영주등록문화재만큼 희방사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 복원본도 중요
김수종 기자 vava-voom@hanmail.net
기사입력 : 2018-08-10 17:50:41

[영주타임뉴스=김수종 기자]드디어 지난 8일 공식적으로 한국근대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는 영주시의 역사공간이 처음으로 등록문화재가 됐다. 지금까지 개별 건축물이나 문헌 등 점() 단위만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마을, 거리 등 선(() 단위가 문화재로 등록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수종 작가
문화재청은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을 등록문화재 제720호로 고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미 지난 6월 말 문화재청은 근대 시기 영주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두서길광복로 일원)’를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 보존과 활용 촉진을 위해 도입된 면()단위 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7월 말 문화재청 내부 결정이 났고, 8일 최종고시된 것이다. 등록문화재는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이 지난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점 단위로 문화재를 등록할 경우 지역의 역사와 문화, 당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을 보존하기 어려웠다선과 면 단위 등록제도를 통해 공간에 관련된 스토리와 맥락에 따라 문화재를 입체적으로 관리하고 동시에 역사 체험 교육 등에 활용하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1941년 영주역이 만들어지면서 배후에 조성된 영주동, 하망동 일대 26377. 영주의 근대생활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공간으로서 보존과 활용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내용을 보면 먼저 구 영주역 5, 7호 관사. 일제강점기 당시 영주역 관사로 건립된 연립주택으로 목조 일식관사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로 내부공간구성, 외관형태, 구조 및 재료의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고 영주역이 중간역으로서 자리한 것이 영주시가 근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철도집단관사로 조성된 관사골이 지니고 있는 도시생활사적 보존과 활용 가치가 있다.

다음은 영주동 근대한옥이다. 고택의 원형은 명나라 황제가 자신의 어머니의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한의사 이석간을 통해 환후가 쾌차되어 그 보답으로 99칸 본채와 별채 여러 채로 나뉘어진 기와집을 지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본채는 사라지고 1920년에 신축한 개량한옥인 별채는 자형으로 정면 7, 측면 6칸의 규모의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다. 고택의 별채로 한옥 주택의 건축형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의원과 하숙집으로 사용되어 일제강점기와 근대산업시기의 생활상이 축적되어 있는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음은 영광이발관이다. 1930년대부터 광복로 남쪽도로변에서 국제이발관이 영업을 시작하여 시온이발관에 이어 현재 영광이발관에 이르는 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70년경 시온이발관을 인수하여 현재까지 영광이발관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생활역사로서의 이발관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1950년대 근대산업시기에 건축된 목조+슬레이트 구조의 건축으로 건축의 완성도는 낮다.

영주에서 80년의 장인의 이용업 생활사를 보여주는 사례로 업계의 변화와 특성 기술을 간직한 장소로 근대유산의 생활사적 가치가 높다.

다음이 풍국정미소. 근대산업시기부터 운영된 정미소로 양곡가공업의 생성과 양곡 유통에 관련한 역사, 정미소의 건축형식과 설비구조, 도정기기들 외에도 저울(막대저울, 판수동저울)등 당시의 정미소와 관련된 기구가 현존하여 양곡가공과 곡물 유통의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양곡가공과 곡물 유통을 주제로 산업문화관, 쌀 카페, 도정 참관 및 판매장으로 활용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다음은 제일교회. 제일교회는 1907년 정석주 집에서 기도 모임으로 시작됐다. 19094월 구성공원 아래쪽 초가 3칸을 매입하여 경북노회에 가입하고 영주교회를 설립했다. 1938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목사와 장로, 전도사들이 구금 또는 옥고를 치뤘다.

6.25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어 1954년 기공하여 신도들의 노역봉사로 1958725일 준공됐다. 영주지역에서는 서양의 고딕식 건축양식을 차용한 절충양식의 예배당 근대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산업시기를 거치면서 영주시의 근현대사 안에서 영주 시민이자 신도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어 전승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다음으로 놀라운 일은 등록문화재 심사를 담당하는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인 윤인석 선생이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회원 40여명과 영주로 근대문화유산 및 공공건축물 답사를 온 일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이은희)4일 영주 근대문화유산 공공건축물을 답사했다. 답사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인 윤인석(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교수가 진행하는 전국 월례 지역순회답사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존 대상지를 시민들의 기부금과 증여를 통해 매입하거나 확보해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세계적인 NGO 단체다.

회원들은 이날 영주제일의 공공건축물로 알려진 풍기읍사무소와 조선시대 정자인 금선정, 풍기지역 도시재생사업의 중심인 금계리 마을회관, 새롭게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148아트스퀘어(연초제초창 구 청사)를 방문해 담배 생산 과정 등을 확인했다.

또한 영주를 대표하는 교회건축물인 영주제일교회와 100여 년 역사의 풍국정미소를 방문해 우길인(80)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울러 영광이발소, 철도관사 등을 둘러보았다.

영주시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회원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지역의 근대문화 건축물에 대한 구체적 보존 방안 마련에 나섰다.

영주의 공공건축물과 근대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세계적인 NGO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회원들이 대거 방문한 것은 영주로 보면 근대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그것도 근대문화유산을 심사하는 책임자인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인 성균관대 건축학과 윤인석 선생 직접 안내를 한 것 또한 놀랍고 대단한 일이다.

영주시 관계자는 "근대문화유산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가치를 넘어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는 관광 상품으로 기획돼야 한다""시가 형성 시기를 잘 반영하고 외부 관광객들이 관심을 둘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데도 고심 중"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실 영주가 놀라고 감동하고, 축제를 열어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희방사로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 복원본이 돌아온 것이다. 지난 6월 말, 6·25전쟁 당시 소실됐던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이 60여 년 만에 영주 희방사로 귀환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유교문화보존회는 지난 626일 경북도청 안민관 1층에서 영주 희방사 설송 주지 스님에게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 복원본을 기증했다. 훈민정음은 우리 민족 최대의 발명이자 언어사, 기록문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 기록유산이다.

언해본은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 해설서인 해례본을 한글로 번역한 서책이다. 영주 희방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훈민정음 언해본 희방사본은 그동안 발견된 언해본 중 최고의 학술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군사작전상 소개(疏開)되면서 목각판이 소실되어 현재는 서책만 보관돼 전해진다. 지난 2016년 훈민정음 해례본 복각에 성공한 유교문화보존회는 소실된 언해본도 복원하고자 작년 10월 언해본 복각 사업에 착수했다.

이번 복각 사업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인 김각한 각자장과 이수자 장우철 각자가 참여했다. 복원사업은 지난 5월 말까지 8개월간의 작업 끝에 10장의 언해본 복각본을 완성했다.

복각은 각수 한 명이 1장을 복원하는 데 식음을 전패하고도 일주일이 걸릴 만큼 고난도의 작업이다.

설송 희방사 주지 스님은 "전쟁 당시 소실됐던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을 희방사에 다시 안장할 수 있게 돼 기쁘다""옛날처럼 인법당에 보존각을 만들어 안치하고 방문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재업 유교문화보존회장은 "경상북도를 비롯해 안동시 등 지자체와 많은 회원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복각 사업을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유교문화보존회는 앞으로도 지역의 소실된 유산을 찾아 복원하고 도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에 국군의 소개(疏開)작전으로 불타지 않았다면 국보1호가 되었어도 부족함이 없는 문화재가 목각판 복원본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을 소중하게 알리고 간직하는 것이 희방사의 큰 임무가 됐고, 영주시의 큰 책무가 된 것이다.

소수박물관 내부에 있는 삼국시대의 불상인 국보 78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처럼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지만, 영주에 있는 복원본도 중요하다.

우리 금동반가상 가운데 최대 걸작이며, 순흥 초암사에서 봉안되어 있던 보물이다. 이 반가상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무튼 영주시는 본격적으로 등록문화재 관리와 숫자의 증대는 물론 희방사로 돌아온 훈민정음 언해본 목각판 복원본과 소수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복원본까지, 부석사나 소수서원만큼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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