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수 및 고위직 일부 공무원들 'Nomos 질서' 'Logos 이성' 알고 있나..
'훈습' 즉 업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공무원은 국가로부터 법률을 위임받을 자격이 없다.
이남열 | 기사입력 2024-12-20 15:08:10

[이남열 충남지역 본부장]
[타임뉴스=이남열 기자수첩]이유없이 태어난 '나' 는 매순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선택의 권리를 갖는다.

한편 그 권리의 책임은 숙명적으로 따른다. 동시에 ''나' 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 대척점에는 유한한 시간을 뺏길 수 밖에 없다.고통믈 얻고 금쪽시간을 내준 격이다.

그 결과 성장기에 흔히 귀에 익숙했던 '침묵' 을 뒤늦게 얻는다. 값진 것을 얻었다고 하는 순간 '나'는 우연히 죽음이 찾아온다.

이 찰나에 프리드리히 니체의니할리즘이 상기되면서 "신은 죽었다" 는 말을 믿게 된다.

책임없이 얻을 수 없는 지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의 선택에 호연지기가 지근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의 심연에 자리한 자성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뿌리)'조차 잊고 사는 상실의 시대에 금수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물이 착시라는 것을 알지 못한 오류적 선택이 원인이다.

붓다는 이를 '업보' 라고 했다. 후대 대승불교에서는 '훈습' 이라 했다. 업보와 훈습은 동의어로써 금수보다 못한 이들이 이것인가! 저것인가! 따지는 것은 모두 허구다. 경전이나 명구는 둘러치나 메치나 한우물에서 태동했고 이를 대중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사의를 모르면서 안고 있다는 것과 꼴이다.

600만 전 침팬치에서 진화한 인류의 역사를 15세기 자본이 태동한 때부터 24시간으로 산출한다면 0000.1초에 불과한데도 대중들은 이를 덕(德)이라고 착각하는 오류 속에서 헤멘다. 찰나의 일생이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불교에서 언급하는 '훈습' 이란 '향의 냄새가 옷에 밴다' 는 의미다. '나' 의 행동이 내가 정한 프레임에 한정될 수 밖에 없는 대중이라는 판단을 내린 붓다는 업보에 쐐기를 박았다.그는 '업보' 대비 대중들이 쉽고 익숙할 수 있는'훈습' 으로 정했다.

훈습은 '나' 를 비롯해 천륜과 사슬처럼 엮인다. 사슬이란 말은 유전적 요인이다. 따라서 훈습은 '나'와 관계된 불특정 대상 모두에게 매개되고 전이된다.

이는 서사시를 통해서도 익히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대 역사 중 조선의 6대 국왕 단종을 복위운동을 밀고한 김질과 조선 최고의 간신 김자점의 후손 백범 김구의 흑역사에서도 넉넉히 포착된다.<김질 - 나무위키참조>

이와 같이 '훈습' 의 영향은 지구상 현존하는 각 객체의 선대로부터 틀림없이 유전된다. 이를 현대 생물학자들은 '당근' 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나' 또한 업보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질서라고 하며 그리스 고대어로 Nomos(법칙)라 한다. 이 불변의 수를 수학에서는 상수라고 한다. 이 업보와 훈습을 절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오직 'Logls(이성)'을 찾아야 한다.

이성이란, 앎을 의미하며 앎은 목적없는 지식을 뜻한다. 반면 목적 있는 지식은 타고난 감각에 의존하는 동물의 생존본능(육구)와 유사하다. 또 기술적 지식은 생업에 매인 '기교' 를 뜻한다. 흔히 '잔재주가 있다' '기교 있다' 는 의미는 같은 말이다. 현 110만 공무원뿐 아니라 95% 사람은 이 기교로 목숨줄을 연명한다. 이들의 삶 자체가 페이크(Pake)다.

이를 모티베이션(motivation)이라 한다. 구성원 또는 원인 내지 요인을 뜻하는 모티브는 동기 내지 의욕을 뜻하며 동인(인과관계)를 반드시 수반한다. 이 과정에서 목표로 삼은 대상인 사물을 유인하고 포섭하려는 성질, 그 성질이 '나와 내 주변인들' 에게 '업보' 또는 '훈습' 으로 작용되면 이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로고스(자연의 질서)에 맞추는 습성을 체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티브의 특징은 '내' 가 소비할 손실의 2배를 넘어선 이익이 보장된다고 추정될 때 발동하는 동기(動機) 즉 행동에 앞서 이익이 우선되며 이를 계산하는 방식인 베틀(솔루션)과 연동된다는 것.

이토록 기기묘묘한 작동 계획은 상호 연동되는 분자핵과 같아 20억년 전 '나' 의 기원이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끈(mitos)으로 둘둘말린 낱알(chondros)' 로 명명되며 오늘날 내 몸에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동력 생산 세포인 미토콘트리아를 의미한다.

'나' 의 몸을 구성한 분자 핵(미토콘트리아)조차 생존을 위한 본능을 욕구와 동기화하면서 손익을 모의했다는 고대 어원 및 근대 사이언스 논문에 따르면, '나' 의 선택권인 5대 정념을 배제하고 이성에 의지해야 한다는 중차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선택은 책임이 따르고 이를 외면한들 산들바람처럼 스쳐갈 수 없는 '훈습' 은 선택에 따른 책임을 외면할때 부메랑이 된다.

따라서 감각이나 직관에 의지해 얻어지는 경험적 현상보다 현상 뒤에 감추어진 그 실체(본질)을 찾고자 나서는 탐구(동물의 발자욱을 쫓아간다)정신에서 '모든 신의 왕은 전쟁' 이라 했던 헤라이클래이토스(BC540~480?년)의 대립ㆍ 비율ㆍ원칙이 연역되었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간 우리의 선대 중 아르키메데스(BC287?~212년)는 '척도' 즉 기준점을 창안했다. 오늘날 '이성' 의 바탕이 된 로고스는 이로부터 창안된다.

위 언급된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는 법률을 위임받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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