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대흥사는 호국 불교의 성지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김형태 | 기사입력 2014-10-28 17:12:03

[해남=김형태기자]

사진출처_대흥사 홈페이지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밞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 [西山大師]-

위 시는 서산대사의 悟道頌(오도송)인 ‘답설야중거’ 이다.

悟道頌(오도송)이란 고승들이 자신이 터득한 깨달음을 기록하여 자신을 경계한 겸손한 글이고 남을 훈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당대의 고승이자 대표적인 호국승인 서산대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전라남도 해남군 대륜산에 위치한 대흥사를 통해야 한다.

대흥사는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곳이다.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은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 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 도량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서산대사를 알기 위해 대흥사를 통해야 함은 이 곳이 유명세를 떨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서산대사의 행적과 업적을 기록한 정보와 그의 유물이 가장 많이 보관되고 있고 대흥사의 수 많은 선승중에 대표라 할 수 있는 인물을 꼽자면 서슴없이 서산대사를 거론하기 때문이다.

서산대사는 어떤 사람인가

휴정(서산대사)은 1520년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완산 최씨로 본래 이름은 여신이고 아명은 운학이며 별호는 백화도인 또는 서산대사, 풍악산인 등으로 불리고 법명은 휴정이다.

휴정의 나이 3세 되던 해 사월초파일에 그의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꼬마스님을 뵈러 왔다"며 아이의 이름을 ‘운학’이라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일로 서산대사의 아명은 운학이 되었다. 9~10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고 거처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동안 글과 무예를 익혀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지리산으로 여정을 떠났고 지리산의 화엄동, 칠불동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게 된다. 이 때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교리를 탐구하던 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출가했다.

그 후 1549년 명종 4년에 승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자리는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 금강산, 두류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등을 다니며 스스로 교리를 갈고 닦고 후학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묘향산으로 피난을 하게된 선조가 사신을 보내서 서산대사를 부르는 일이 있게된다.

서산대사는 선조와의 만남 후 전국에 격문을 돌려 구국에 앞장설 승려들을 모았고 의승군을 통솔하여 평양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선조는 서산대사의 공을 높이 사 군직을 하사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제자인 유정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그 뒤에도 여러 곳을 두루 다니다가 나이 85세, 법랍 67세에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21일 동안 방 안에 기이한 향기가 가득하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의 생애는 무엇이 참된 승려의 길인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 여파는 마침내 전국의 승려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그것이 결국 선불교 중흥의 새 장을 열기에 이르른 것이다. 실로 조선불교는 서산대사라는 거대한 봉우리의 출현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도 매우 잘 지어 불교의 깊고 신묘한 경지를 읊은 불교시와 애국시가 많이 남아있다. 저서에는 <청허당집><선가귀감> 등이 있다.

이 글에서 서산대사의 호국충정과 종교인의 충실한 삶을 엿볼 수 있어야 하겠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마다하고 산으로 돌아간 그의 결정, 나라가 어려워지자 이를 지키고자 의연히 떨쳐 일어난 그의 충정.

현대인의 삶에 비춰 보자. 지금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한가?

모두가 취해 있다. 돈에 취해 있고, 권세에 취해 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성전에 취해 있다.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 어찌 이렇단 말인가...

경우에 따라 서산대사처럼 본연의 할 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도(또는 신도)를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현금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른것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동하면 마치 그 사람들이 자신의 것마냥 “빼앗겼다"라고 하며 심지어는 “상도가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마치 그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되어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장사를 하는 ‘상인’이 되어버린 것인가...

신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인가? 바른 것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사고파는 물건인가?

불교의 한 스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복잡하다. 갈등 또 갈등이고 꽉 막혀있다. 집 앞의 철문 닫으면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누가 죽어나가도 모른다. 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들은 이런 문제들을 풀어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하며 “바로 성직자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가르칠 때 참 조심해야 하고 잘못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올바른 종교인의 모습에 대해 성토했다.

과연 어떤 신이 돈에 욕심내라 하였으며 명예를 쫓는 삶을 살아라 했겠는가...

그렇게 살도록 이끌었다면 돈과 명예를 쫓는 ‘종교지도자’들의 신은 분명히 ‘마귀이고 악신’일 것이다.

필자는 불교인도 만나보았고, 선도를 닦는 이도 만나보았고, 기독교의 목사도 만나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성직자라는 것, 그리고 그들 역시 신앙을 하는 사람일 뿐 그들이 신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리석은 자(내 눈에 보이고 내가 경험하고 아는 세계만이 전부라고 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저들의 모습을 경계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다. 또한, 참 진리를 가르치고 참된 신앙을 하는 곳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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