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에는‘독립군 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가 있다.
일제 때 독립 운동가들의 수호신 역할 맡아..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4-13 09:11:16
【영동 = 타임뉴스 편집부】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마을 입구에‘독립군 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어 화제다.

한가로운 농촌 주택가에 서 있는 키 15m, 둘레 10m, 수령 350년(보호수 지정: 영동-43호, 지정일자: 1982년 11월 11일, 위치: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1366번지)의 나무로 뿌리서부터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란 것처럼 두 개의 줄기가 뻗어 나와서, 느티나무로서는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나무다.

주위에 단을 쌓고, 평상을 놓아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정자나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독립군’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고, 그저 평안함이 배어나올 뿐이다.

독립군 나무라는 별명은 일제 때 이 나무가 당당하게 수행해낸 역할에서 비롯됐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어려워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조직 구성원간의 원활한 연락이었다.

특히 서울과 남부 지방을 연결하는 영동 지역은 중요한 통로였다. 당시 영동은 서울과 영·호남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일본인 감시를 피해 이 지역을 통과하는 일은 무엇보다 전국 규모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걸 잘 아는 일본 순사들도 영동지역의 순찰과 감시는 어느 지역에서보다 철저했다.

주민의 도움 없이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해서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마을 사람들이 궁리해낸 묘책은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감시자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고 그 결과를 나뭇가지에 암호로 표시하기로 했다.

허름한 헝겊을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어서 감시 상태를 알리는 방법이었다.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띌 만큼 높지거니 자란 나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은밀하게 나뭇가지에 헝겊을 걸었고, 산에 숨어서 마을 사람들의 신호를 숨죽여 기다리던 독립운동가들은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끼는 헝겊을 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3·1운동 때에 이 나무는 서울에서 남부지방으로 독립선언문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광복 이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독립군 나무’또는‘독립투사 느티나무’로 불렀다.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크기로 자란 큰 나무이기 때문에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 나무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그 당시의독립정신은 지금도 이 마을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마을 주민 박수만(69·남)씨는 “잎이 무성한 여름 때는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기러 오는 화가와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며“늠름한 나무를 보면서 마을과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군 나무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여수타임뉴스광양타임뉴스순천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