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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희신 군수에게...하나를 세우기보다, 하나를 걷어내는 일이 어렵다

[타임뉴스]윤희신 군수에게 묻는다. 하나를 세우기보다, 하나를 걷어내는 일이 어렵다. 즉 새로운 것을 만드는 정치보다 해로운 것을 없애는 행정(興一利不若除一害 =흥일리불야제일해=)을 하시라

                                                

[대책위 박승민 사무총장]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정책, 새로운 조직, 새로운 사업, 새로운 건물 등 정치인은 임기가 시작되면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 하고, 행정은 새로운 사업계획과 예산을 내놓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새로운 것 하나를 더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었던 잘못 하나를 바로잡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몽골 칸의 책사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의 명구가 오늘날 정치인의 귀감이 되야 한다.

"하나의 이로운 일을 새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하나의 이로운 일을 새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해로운 일을 제거함보다 못하다"(生一事不若減一事 =생일사부약감일사=).

800여 년 전의 명언이지만 오늘의 중앙 또는 지방행정의 실천 잣대로 손색이 없다. 이유를 묻는다면, 저들은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윤희신 군정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된다. 보통 세인(世人)들은 새 선출직이 취임하면 새로운 것은, 신관광사업은, 새 복지는, 국·도비는! 이라는 새것만 묻는다.

물론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라면, 지난 8년의 문제, 이전의 구폐를 찾아 그만둘 것은 무엇인지, 바뀐 제도는 무엇인지, 상식에 어긋난 것이 무엇인지 묻겠다. 즉 '온고지신' 옛것을 모르고 새것을 알수 없는 이치를 찾아 나서겠다.

특히 지난 전 군정이 전반을 제 멋대로 농단을 알고 있는 한 그 얽힌 매듭을 풀어 낼 것이고, 농단 군정으로 꾸며놓은 위원회가 있다면 해체하겠다. 특히 행정이 구속한 주민의 자율권을 원위치로 돌려놓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오랜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예산의 흐름을 불투명하게 유지돼 왔다면 이에 대해서는 독단이라도 개혁을 행해야 할 것이다.

민선6기 한상기 전 군수의 독단이란 먼저 알고 행하는 것이니 따를만 하겠으나, 민선 7,8기 가세로 전 군정의 독선은 무지에서 기인한 바 전면 배제할 것을 주문한다.

윤 군수가 이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승계’로 4년의 무사를 꾀한다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제9회 지방선거의 승리는 사실상 전 군수의 8년 농단, 민주당 출신 선수가 약체였다. 따라서 윤희신 군수의 역량 검증이 끝난 것이라 아니라 이제 시작인 셈이다.

전 군정의 독선적 폐해를 모르는 척하는 방임은 그 책임의 무게가 같을 것이고, 문제를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동급의 군정농단으로 지목될 것은 뻔하다.

다행이 시작이 좋은 조짐은 가세로 본인의 작명(作名)한 현판이나 치적비를 지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오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상위법과 충돌된다 해도 관치를 위해 촘촘히 짜늫은 663쪽의 제도를 뜯어 고쳐야만 그가 쌓아논 영욕(榮辱)의 세력들이 두려움을 안다.

사실상 이런 혁신은 정부기관에서 할 일은 아니겠으나 지난 8년은 공동체 붕괴 수준이였기에 이보다 더 큰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가세로 전 군정이 3선을 목표로 구조상 짜놓은 밀당 조직의 혈세 수수행위를 없애야 한다. 각종 위원회부터, 협의회, 지원단 등 그 조직에 지원되는 예산도 무우 자르듯 쳐 내야 한다.

그래서 야율초재의 두 번째 명문을 윤 군수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일사불약삼일사(生一事不若減一事).

일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하나를 줄이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행정중심에서 주민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자율성도 마찬가지다. 행정은 주민의 생업이 우선해야 한다. 시책이나 사업보다 앞에 두어야 한다. 지원이나 통제도 주민의 안위와 연계해야 한다. 전 군정의 정치적 포퍼먼스(행사), 포퓰리즘(선동)은 그의 전유물이였다. 그가 내뱉은 상습적 거짓말은 우리 공동체 속속들이 좀슬게 만들었고 그는 8년의 군정에서 마술사로 활동했다.

마술이란 본디 쇼다. 그는 8년간 눈속임으로 행정을 꾸며왔다.

그에게 기법은 보이지 않았고, 기교와 간계만 있었다. 그 측근들은 염치를 모른다. 윤 군수가 이를 알지 못한다면 김영인 의장에게 캐물어야 한다.

정상의 행정 조직에 인사권으로 맹종을 강요했고, 주민은 관치행정으로 몰아갔다. 지원이라는 명분하에 사람과 조직의 활동방식까지 비비꼬아 왜곡된 구조를 만들었다. 윤 군수는 이제라도 되짚어야 한다. 그것이 과연 지원이였는가. 농단이였는가를.

행정이 한 걸음 물러서면 주민이 자원해 도와준다. 모든 조직을 행정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자원봉사라면 더욱 그렇다. 자원봉사의 첫 글자는 ‘자원(自願)’이다. 스스로 원해서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윤 군수가 행할 일은 '생일사부약감일사'를 눈여겨 봐야 한다.

주민의 선의(자유의지)를 행정의 지휘체계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장애물을 걷어주는 군수가 되야 한다. 이 역시 ‘흥일리불약제일해’와 맞닿아 있다.

새로운 지원사업 하나보다 주민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장애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더 큰 지원이다. 앞서 필자는 2014년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지인에게 보냈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세상 사는 것 꿈과 같으니...”자리는 영원하지 않다. 군수도 떠나고, 공무원도 퇴직하며, 기자 역시 언젠가는 펜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회자정리다.

[2014년 7월 9일 12:43분 국립공원 지인에게 보낸 필자의 문자 기록]

그러나 선출직은 자신이 만든 제도와 결정이 남는다. 그렇다면 가장 값진 평가는 무엇일까. 거대한 건물을 몇 개 지었다고, 수백 억 원짜리 신규사업을 몇 개 만들었다고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자평하는 것을 야율초재는 무모하다고 지적한다. 가세로 전 군정은 그 무모함을 넘어 무도함으로 제 살길에 집착한 두 번째 선출직이다.

윤 군수는 야율초재의 명구을 각인해야 한다. 그는 세계의 절반을 지배할 치적을 칸에게 안겨준 자다. 전 군정의 농단속에 4년을 맡은 윤 군수는 정치할 때가 아니다. 오욕으로 가득찬 태안군정에서 그의 흔적을 지울 때다.

어쩌면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치적일지도 모른다. 새롭다는 것은 세인의 박수가 따라오겠지만, 오래된 것을 걷어내는 사람에게는 기득권자의 반발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태안저널(주) 태안신문의 반발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5만 200명의 군민을 믿고 침묵과 함께 따라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야율초재의 명문을 재차 꺼내본다. 興一利不若除一害(흥일리불약제일해)

하나의 이로움을 새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해로움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새로운 시대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대를 바꾸는 일은 아주 단순할 수 있다. 가세로가 엎질러 놓은 복수불반불을 정리할 수 있다면 행정과 민정은 자동으로 굴러간다. 그때 정치가 필요한 법이다.

이남열 기자 이남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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