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시립박물관은 최근 지역 수집가로부터 1913년 작성된 ‘송자대전중간소 망첩’과 피봉 2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망첩에는 송자대전판을 다시 만들기 위해 구성된 중간소의 조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상의장·소장·교정장·감인장·총무장·재무장·감무 등 7개 직책과 담당자 이름이 기록됐고, 조직의 신규 회원으로 추천된 인물도 확인됐다. 각 직책의 직인까지 남아 있다.
문서 작성 시점은 계축년 9월 15일로, 1913년에 해당한다. 당시 송자대전판 중간사업이 일정한 조직과 업무체계를 갖춰 추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번 발견이 중요한 것은 문서가 만들어진 시점 때문이다.
화양동에 보관돼 있던 기존 송자대전판은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됐다. 이후 유림들은 1909년 정부에 중간 비용 지원을 요청했고, 1910년에는 ‘송자대전판본중간사무소’를 개소했다. 『황성신문』에도 관련 광고가 여러 차례 실렸다.
하지만 1910년 이후 중간사업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송자대전 중간소 관련 고문서 대부분은 1925년 이후 자료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1925년경 대전 소제리에 중간소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판각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해 왔다. 이번에 발견된 1913년 망첩은 1910년 신문 기록과 1925년 이후 고문서 사이에 놓인 중간사업의 활동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첫 자료다.
문서에 기록된 참여 인물도 당시 중간소의 성격을 밝힐 단서를 제공한다.
상의장 민영규, 소장 김종한, 교정장 김학진, 감인장 이용구, 총무장 민종식, 재무장 이정로, 감무 송병유가 이름을 올렸다. 찬무유사로 추천된 박찬우도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민영규·김종한·김학진은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인물들이다. 박찬우는 일제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정치적으로 활동한 대한협회 회원으로 추정된다.
반면 총무장으로 기록된 민종식은 을사조약 이후 홍주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운 항일 의병장이다. 서로 다른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 같은 중간소 조직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다만 이번 자료만으로 당시 조직의 성격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자료를 발굴한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관은 “아직 송자대전판 중간사업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국권피탈을 전후한 시기 친일인사들이 중간사업의 핵심 직책에 참여하는 한편, 항일 의병장인 민종식까지 같은 조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은 조직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흥미롭다”고 밝혔다.
1920년대 중반 다시 등장한 중간소에서는 친일인사들이 상당 부분 빠지고 전국 유림이 참여했다. 존화양이와 위정척사의 계승도 중간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1910년대와 1920년대 중간사업의 인적·사상적 연속성과 변화 과정이 향후 연구과제로 남게 됐다.
권정연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초기 중간소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부족했는데, 이번 망첩은 기존 자료보다 10여 년 앞설 뿐 아니라 중간소의 직책과 인명, 직인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망첩을 최근 미국에서 환수한 송자대전판 1점과 함께 9월 말 ‘박물관 속 작은 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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