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염오봉 교수 기고 "죽은 시인의 사회와 교육혁명"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2-16 09:06:03
염오봉
【칼럼】 지금도 가슴 한 곳을 아리게 하는 영화가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약20년 전 불현듯 다가와서 무거운 감동을 주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로얄코스로 유명한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창의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의 인생멘토가 된 어느 교사에 관한 이야기다. 경쟁과 아이비리그 진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기존 교육에 과감한 도전을 했던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학벌과 세속적 명예에 매몰되었던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창문이 되었다.

유명한 "카르페디엠" 즉 현재를 잡으라는 아름다운 명령을 따르려던 한 제자의 자살로 인해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지만 학생들은 권위와 선입견의 사슬을 풀어헤치고 키팅 선생님의 뒷모습에 환호한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과연 이 땅의 학교 현장에 키팅 선생님은 얼마나 살아 숨쉬고 있을까? 여전히 우리 청소년들은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 영화가 꿈꾸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는 결국 "죽은 청춘의 사회"에서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자괴감마저 든다.

최근에 역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정치권에서 교육개혁문제가 단연 화두로 떠오른다. 대한민국 5천만명이 교육전문가라고 하지 않는가? 대한민국호의 청년실업과 양극화의 고통, 그 절망의 헬스조선은 근원적으로 일그러진 교육에 기인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비전문가적 흥미 때문은 아니다. 나는 지난 10여년간 성남에서 "꼴찌없는글방"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더 좋은 배움과 삶에 관해 몸으로 부딪히며 좌충우돌했다.

많은 청소년들은 나를 "꼴찌샘"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1등이 아닌 꼴찌를 지향했던 이유는 이것이 아이들의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꼴찌없는글방은 넓은 세상을 교실로 삼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배움을 추구했다. 내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은 우리 교육문제의 본질은 바로 1등만을 지향하는 "경쟁"이다. 이 밀림 속 약육강식의 경쟁이 장악하고 있는 학교를 더불어 살기 위한 학교로 바꾸는 것이 교육혁명의 본질이다.

그런데 학제를 6ㅡ3ㅡ3에서 5ㅡ5ㅡ2로 바꾸고 교육부를 폐지하여 교육혁명을 하겠다는 안철수 대선후보의 주장을 마주하면서 놀라움과 슬픔이 교차한다.

학제개편과 교육부 폐지를 통해 한국 교육문제의 본질을 수술하겠다는 그 저돌성에 놀랍고 결국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서는 어설픈 교육팔이를 하는 현실에 서글프다. 매년 8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고 학교를 감옥, 교사를 간수, 학생을 죄수라 스스로 부르는 청소년들의 절규를 아는가?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감히 빈자의 고통을 논하지 말라. 그래도 교육에 관해 뭔가 해보겠다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퍽한 아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라.

학제를 5ㅡ5ㅡ2로 바꾸어 도데체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고등학교 다음에 2년간의 전문학교에서 진로탐색을 하라는 것인데 자신만의 적성과 경력개발은 청소년기의 모든 기간에 이루어져야지 고교 졸업후 달랑 2년간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진학연령을 6세로 낮추는 것도 아동 인지 발달단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유치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공교육화하는 것은 또하나의 관치교육의 확장을 초래하고 수많은 유치원 설립자들과 재산권 침해문제로 충돌할 수 있다. 이처럼 학제개편은 수많은 이해관계의 소용돌이를 일으킬뿐 정작 교육문제의 본질인 경쟁구조의 극복과는 관련이 없다.

교육부 폐지의 발상도 황당하다. 세계 최고의 교육개혁을 성공시킨 핀란드도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국가교육청'에서 40여년에 걸쳐 추진했다. 한국의 교육부가 학교를 통제하고 입시경쟁구조를 고착화시켜 관료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초.중.고.대학의 학교법인이 세습적 특권세력으로 고착화되어 학교가 이들의 지대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은 망국적이다.

이 학교재벌들이 정치권에 진출하여 강력한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이 부패의 고리가 문제의 본질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관료와 학교재단 간의 이익공유의 공생관계를 뿌리뽑아야 하며 폐쇄적인 관료제를 혁파해서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 교육부를 뜯어고친 후 이들이 국가교육개혁의 역동적인 추진체가 되어야 한다. 국방부가 무기 구입과정에서 뇌물수수의 범죄를 저질르면 그 죄를 단죄해야지 국방부를 폐지한다면 나라는 어떻게 지키려 하는가?

이제 교육문제의 본질인 '과잉 경쟁'에 촛점을 두고 수술하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초.중.고 12년간 죽음의 입시지옥을 거치면서 대다수 서민들은 온갖 교육비에 자산을 모두 소비하고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장벽에 가로막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다. 겨우 취업해도 반 수 이상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으로 내몰린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청소년들의 삶을 빨아들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대학'만을 외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예컨데 특성화교육을 이수한 고교졸업자가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에 우선 취업하는 파격적인 제도는 어떤가?

벽돌공, 엔지니어, 수리기사 등 위험직무의 기술자들에게 정부가 일정비율의 임금을 보상해주는 가칭 '공정보상임금제'는 어떤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학력중심의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모두가 대학에 가려는 지옥의 교육도박판이 멈춘다. 고등학생의 약90%가 대학에 가는 이 고비용의 구조를 과연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파국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교육혁명은 궁극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지향한다. 많은 교육전문가와 정치인이 4차 산업혁명과 창의적인 교육을 주장한다. 그런데 통합형 교과서를 만들고 3D프린팅을 가르쳐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개발하겠다는 발상 앞에서 한숨이 나온다. 도데체 왜 창의성이 뭔가 가르쳐서 개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재를 만드는 학교와 학원이 범람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 밖에 없다.

진정 창의적인 교육의 실현방법은 학교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창의적이 된다. 아이들을 학교의 과도한 규율과 경쟁의 족쇄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학교의 주인은 교육부 공무원도 학교재단도 교사도 아니며, 학생들이 주인이다.

학생들이 진정 원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런 교육을 제공하라. 학교의 운영과 교육프로그램의 결정을 학생과 교사가 주도하는 협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들을 좁은 교실안 규격화된 책걸상에 묶어놓고 획일화된 과목의 내용을 무조건 암기시키는 고문을 깨야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내용을 선택해서 배우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내용을 연구 개발해야 한다.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는 이런 점에서 희망의 단초를 보여준다.

학생들이 주1회 정도 박물관 같은 학교밖 시설을 견학해서 진로탐색을 하는 지금의 교육은 답답하다. 영화제작, 작업장의 인턴쉽, 장기 프로젝트 수행 등 한 가지 일에 장기간 참여하여 교과서의 지식을 접목하는 "Learning by doing "이 필요하다.

스티브잡스가 인문학과 융합형 인재를 강조한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데 인문학을 단기 속성으로 가르키는 학원에 학생들이 몰려드는 모습은 우스광스럽다. 모든 배움이 그저 그럴듯한 일자리를 차지하고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공동체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교육은 원래 인간이 생명의 유한함으로 부터 공동체의 지속성장을 이루기 위해 고안해낸 삶의 지혜이다. 그런데 그 교육의 현장이 더 많은 돈, 명예, 권력을 쟁취하여 타인을 지배하는 싸움의 장이라면 공동체의 지속은 불가능하다.

학교 시험에서 1등이 꼴찌에 비해 사회의 발전에 더 기여한다고 귀하는 믿는가? 이것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왜 우리 사회는 시험점수로 나타난 1등이 꼴찌를 지배하는 학교를 여전히 용인하고 있는가? 핀란드는 학교의 모든 시험에서 등수 매기기를 폐지하였다. 역설적으로 핀란드 학생들의 글쓰기, 수학, 과학 능력이 세계 1위이다.

점수로 1등과 꼴찌를 나누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다르다고 바라보자. 우열반으로 가르지 말고 개인별로 다른 학습트랙을 추구하도록 자유롭게 하자. 이것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님이 부르짓던 모습이다. 학교 안의 모든 것이 시험점수화 되고 등수가 매겨지는 구조에서 '믿음'은 설 자리가 없다.학생과 교사, 교수 사이에 신뢰가 증발해 버리고 오직 지식 판매상과 구매자의 척박한 관계만이 지배한다. 학교폭력이 일상화되고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아동을 폭행한다. 이제 교육현장에서 등수 매기기를 버리자. 그저 이 아이와 저 아이는 이런 점에서 다르다고 말하자.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1인당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한다. 중국, 일본보

다 더 높은 미국 유학열기를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노벨과학상의 근처에도 못간다. 이제 그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들은 그 지독한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가 감옥이 아닌 천국이 될 수 있다.

염오봉

제35회 행정고시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전)

안양대학교 겸임교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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