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젊은 사람들은 사랑고백을 위해 아지로(網代) 하트스톤(Heart stone)에 자주 방문
김수종 작가의 2017년 12월 일본 쓰시마 여행기 , 4
김수종 | 기사입력 2017-12-23 18:36:15

[서울타임뉴스=김수종] 이곳에는 각종 장신구와 청동거울, 광형동모(広型銅矛)등 다수의 유물이 무덤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동모(銅矛)는 동검(銅劍동과(銅戈)와 함께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쓰시마는 상자식 석관무덤에서 많은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왕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고분은 지난 1971년 현지 초등학생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한일문화교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지정사적이다. 주택가 언덕에 있는 작은 무덤을 보면서 쓰시마 역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한반도와 교류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는 일본이 된 쓰시마는 언제부터 일본영토가 되었을까? 대마도는 삼국시대에는 우리영토였고 고려 말까지 조세를 바친 기록이 있다. 그러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고려 창왕2년인 1389년 박위 장군을 중심으로 1차 대마도 정벌을 했다.

그 후로도 대마도 정벌은 두 차례 더 이루어졌고 다시금 조선 땅이 되었다.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나선 시기에도 한반도의 부속도서였던 이곳은 임진왜란 직전에 한반도 정벌 전진기지로 일본이 본격적으로 점거했다.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사위였던 19대 대마도 도주 소요시토시(宗義智)는 조선의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직전까지 대마도 병마사로 조선에서 녹봉을 받았다. 그러나 소요시토시는 강해진 일본 편에 서게 되고, 조선 지리를 꿰뚫고 조선말에도 능통해 왜군 앞잡이로 전쟁 선봉에 서게 된다.

다시 말해 임진왜란 준비단계에 조선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 수군 근거지가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쓰시마를 완전히 일본영토로 편입했다. 쓰시마는 1871년에 이즈하라현 소속이 되었다가, 1876년 다시 나가사키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승만은 정부수립 직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무려 60여 회에 걸쳐 일본정부와 미국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속령에 대한 성명도 발표했고, 점유권 회수요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그 어떤 동의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전쟁이 터진다. 전쟁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일본을 통해 유엔군물자공급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일본의 협조가 필요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대마도 반환을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써 대마도는 쓰시마가 되었고 우리역사 속에서 잊혀져가게 되었다.

이어 다시 차를 타고는 인근 도노사키(殿崎)’일러우호의 언덕(日露友好)’으로 갔다. 동백나무 숲을 산책하기 위해서다. 한겨울에 피는 동백이 서서히 피고 있었다. 보통 이곳의 동백은 12월말에서 1월 중하순까지 절정이다. 아직은 꽃망울이 보이고, 때 이르게 핀 몇 개의 동백꽃이 보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곳 동백나무 숲이 좋다.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을 날고 있는 매도 좋다. 인접한 옥빛바다도 마음에 든다. 멀리 보이는 미우다 해수욕장과 매 바위, 저 건너편에 있는 시타자키(舌崎)의 등대와 동백나무 숲도 보인다. 오늘은 햇살도 좋고 바람도 살살 불어 산책하기에 편하다.

동백나무 아래에는 이제는 열매를 맺은 사약(賜藥) 재료로 많이 쓰이는 독성이 강한 약초인 천남성(天南星) 붉은 열매가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다. 천남성 열매는 보통 10~11월에 붉은색으로 포도송이처럼 달리는데, 이곳은 기후 때문인지 조금 늦게 피고 달리는가 보다.

동백꽃이 활짝 핀 시기에 오고 싶었는데, 마음이 조금 아프지만 1월에 다시 오기로 한다. 이제 점심식사를 위해서 다시 ‘TOKISEKI식당으로 가서 도시락 정식에 오징어 국, 커피를 추가하여 먹었다. 오늘은 점심손님이 많은지 11시에 30명 내외. 1시에 30명 내외가 몰려 온 듯하다.

장사가 잘 되면 좋은데, 아직은 수지타산을 맞지 않는 듯 보인다. 주방도 홀도 손발이 잘 안 맞고, 1층에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 집, 2층에 식당, 3층에 식당 겸 휴게실을 전부 일괄 관리하지 못할 정도로 인력수급이 안 되고 있다.

아무튼 나는 식사를 하고는 잠시 쉬다가 항구로 가서 출국수속발권을 하고는 잠시 산책을 더 했다. 산언덕에 있는 신사를 둘러보기도 하고, 항구 앞 바다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렌터카 사업자 김삼관 사장님을 돕기 위해 2번 왕복하여 반납되는 차를 가와치 차고에 탁송했다.

김 사장님은 고마운 마음으로 연우에게 주라고 젤리3봉을 사서 주었다. 늘 감사한 분이다. 넉넉한 마음에 같은 경주 김씨라는 이유로 나에게는 삼촌과 조카 관계처럼 기분 좋게 대해주시는 분이다. 3이 되는 연우에게 작은 선물이라면서 사준 젤리는 서울로 돌아와 연우에게 주니 감사하게 잘 먹는다.

며칠 더 묵기로 했던 고 이사님도 일이 생겨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여 나랑 동행하여 420분 배를 타고는 부산으로 향했다. 파도도 없고 조용하게 멀미도 없이 잘 왔다. 나랑 고 이사는 부산역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서울로 향했다.

이것으로 나의 13번째 쓰시마 여행을 마친다. 하루면 다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쓰시마는 갈수록 볼 것이 많아지고 있는 섬이다. 그래서 조선통신사 등 역사문화, 교류사에 대하여 공부할 것도 볼 책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연말 행복한 섬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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