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국가안보위기, 국가의 3대 조건’ 건국일 강연
- 태안군 자유한국당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건국일 논란 강연회’ -
나정남 | 기사입력 2018-08-15 10:15:56
[태안타임뉴스-나정남칼럼] 금일 16시 태안군 센트럴훼딩홀에서 서태안 지역구 의원인 성일종의원이 주관하여 애국 보수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이 태안군민을 위한 강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국가안보위기를 걱정하는 태안군의 어른들이 참석하였고, 젊은 청년들도 성황을 이룬 것은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안보 경제를 살리고자 의식개혁에 동참한 분들이라 할 수 있다 .

심재철의원의 강연 주제는 현 정부의 ‘1919. 04. 11일 임시정부 수립 건국절 변경 논쟁’에 대한 토론회 및 강연회가 주제였다.

심재철의원은 국가를 이루는 3대 조건은 주권, 영토, 인구가 구성되어 법치를 확립할 수 있을 때 국가가 수립되는 것이며, 국제적으로도 국가로 인정을 받는 것이니 1948. 08.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 명백하다고 성토 하였다 .

그렇다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때에도 건국일 논란에 있었고, ‘김대중 또한 1948. 08. 15일 건국일이 맞다’며 쐐기를 박았고, 특히 노무현은 ‘해방과 동시에 건국일이 타당하다’ 하였고 ‘굳이 광복절을 죽이고 건국절을 그 위에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공식 발언하였다.

노무현이 광복절을 거론한 것은 광복절 이후 건국절이 수순이며, 국가의 3대 조건을 갖춘 것이지 건국이 있고, 광복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명백한 역사적 고찰속에 답을 내렸음에도 문재인정부가 1919년 04. 11일 건국절 논쟁에 모호한 불씨를 당긴 것은 앞으로도 상당한 이념 대립을 야기 시키고자 하는 ‘시한 폭탄을 국민에게 던졌다’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심재철의원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김구의 흑역사를 밝혀보자. 김구의 상하이 임시정부의 수립에 뒤늦은 동참은 대단히 계략적인 수립이였음은 역사적 기록에서도 충분히 검증되고 있다는 것을 금새 알수 있다.

1919년경 당시 일본과 러시아도 국지전으로 불안하였고, 한반도와 러시아임시정부도 정세가 어수선하였다. 한창 기세가 등등한 일본과 러시아의 국지전으로 블라디보스톡이 일본에게 점령될 것을 1919년에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참여한 백범김구와 신한청년당 및 29인이 모여 1919. 04. 11일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그 해 6월말 7월초쯤 한인사회당 이동휘와 김립, 박진순, 박애, 최태열 등과 상해 임정문제를 논의하였고, 이 간부회의에서 이동휘와 김립은 상해 임정을 승인하고, 당 간부들까지 상해 임정참여를 허락하였다.임정수립의 최대 공신은 결국 한인 사회당으로 볼수 있는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920년 7월경 레닌 국제공산당 코민테른 소속인 한인사회당을 통하여 레닌으로부터 임정을 승인받았고 운동자금 지원을 받아 임정을 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이는 레닌에게 임정을 승인받고 지원을 약속받은 자는 김구가 아니라, 독립군 김립,이동희였고, 김립,이동휘는 상해 임정을 승인한 자이며, 한인사회당 당원들이 임정에 참여하는 것도 허락한 임정 실세이면서, 한인사회당이 주도한 것이기도 하였다.

레닌으로부터 임정을 승인받은 후 한인사회당이 코민테른(국제공산당)에게 받은 운동자금은 1차와 2차로 나뉘어진다. 1922년 10월 레닌으로부터 2차 자금을 지원받은 김립은 당시 60만 루블을 상하이까지 운반하고자 하였으나, 한 번에 운반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단 20만 루블을 모스코바에 맡기고 40만 루블을 상해로 가져왔다.

이때 김구가 보낸 오면직 , 노종균 등의 총격을 받고 김립, 이동휘등 거물급 독립군이 사망한다 . 당시 일본헌병은 김립의 시신에서 12발의 총알이 발견되었고, 배일흥한을 주창한 거물 독립군의 사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김구가 흑역사 또는 암살범으로 의혹을 받는 것은 레닌 군자금 탈취를 위한 ‘배일흥한의 독립군 다수의 살해범’이며 , 레닌도 직접적 김구에게 지원한다든가, 중국으로부터는 지원 및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광복 전인 안중근 직계 가족을 살해하고자 하였던 의혹 중 1938년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의 살해 사망의혹도 김구를 지목하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의혹이 확증으로 변하는 것은 1945. 05월 해방 3개월전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을 암살교사’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김구의 흑역사가 의혹이 아닌 사실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며, 안중근의 직계가족과 김구의 가족은 약 70년을 남남으로 살게 된 것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난 2017. 09. 29일 백범기념관에서 김미씨(손녀)와 안기수씨(조카손녀)가 재회하게 되었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

이때 안기수씨가 1939년 백범김구와 장남 김인, 차남 김신과 김구가 찍은 가족사진을 김미씨에게 기증한다. 1938년 안공근이 살해당한 후 약 80년만의 재회였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이들 가족이 80년만의 재회에 안공근이 살해당한 즈음의 김구 가족사진을 전달한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다.

1980년 브루스커밍스나 리처드로빈슨은,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각종 암살 사건의 배후로 또한 김구를 지목하였다는 것이 현재 살아 있는 역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오늘 ‘광주가 고향인 심재철의원이 241개의 기초단체 중 인구분포 하위권에 해당하는 태안까지 방문’하여 역사적 실체를 밝힌 애국정신은 ‘국가가 있어야 사회가 있고, 개인이 있다’라며 ‘국가의 근간을 밝히고자 하는 사명감을 높이 치하’하는 것이다.

또한 현 정부가 잘하는 것은(금산분리법) 박수를 치고, 현 정부의 실책은 과감히 비평하는 야당으로서의 주도적 역할에 동참을 호소하고자 하였던 그 정성에 필자는 감명 받았다.

역사를 알면 현재 나아갈 길이 보이고 미래를 답보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공자는 옛것을 알고 현재를 알면 스승이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한바가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오는 강연이였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현 야당 의원중 가장 직설적인 심재철의원을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태안까지 강연을 올 수 있도록 만든 성일종의원에게 이날 참석하였던 태안군 어르신들도 큰 박수로 격려했다.

필자가 김구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심재철의원은 다수를 이끌어 가야 하는 공인으로서 거론하지 말아야 말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어, 김구의 의혹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을 밝힌 것이며, 이 또한 국민이 알아야 할 일이며, 국가를 위한 현명한 지혜를 모으고자 거론 한 것이다.

또한 과거를 알고 사리 분별에 따른 혜안을 넓히는 것이, 백년대계를 위한 애국충절이라 판단되어 부연한 것이다.

필자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재인정부의 건국일 논란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공청회가 서⦁태안군에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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