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과 적법, 미묘한 경계…함정수사,의정부지법 "성매매 실현 가능성 없어 죄 성립 안 돼"
'손님 가장' 함정수사에 걸린 성매매 알선..항소심서 '무죄'
서승만 | 기사입력 2019-04-28 21:47:39

[타임뉴스=서승만 기자] 손님으로 가장한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 성매매 알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흥주점 실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경찰관에게 성 매수 의사가 실제로는 없어 성매매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35)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1심은 A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2월 14일 새벽 유흥주점에 온 손님의 요청으로 도우미 여성을 불러줬다.

얼마 후 손님이 도우미 여성과 속칭 '2차'를 가겠다고 하자 A씨는 성매매 알선 비용 20만원과 술값 등 총 60만원을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손님은 경찰관이었다. 손님으로 위장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유흥업소를 단속 중이었다. 결국 A씨는 재판에 넘겨져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성매매를 알선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A씨는 "함정수사였다"는 이유 등으로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성매매 실현 가능성에 주목했다.
도우미 여성이 성을 팔려는 의사가 있었더라도 상대 남성에게 성 매수 의사가 없었다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관은 성을 실제로 매수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우미 여성과의 성매매는 이를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경찰관이 고가의 술을 주문하고 화대가 포함된 술값을 현금으로 제시하면서 성매매알선을 요구하는 수사방법을 사용해, 유흥주점 관계자들이 금전적 유혹을 받게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권기백 판사는 함정수사로 성매매알선 단속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진 유흥주점 업주 C(40)씨의 사건에 대해 공소 기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C씨가 성매매를 알선하게 된 동기와 경위 등에 비춰 보면 수사기관이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한 것으로 위법한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함정수사의 정의와 분류
함정수사란 수사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의뢰를 받은 정보원과 같은 수사협조자가 범죄를 교사하거나 방조한 후에 그 실행을 기다렸다가 범인을 검거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방법을 말한다.

함정수사는 마약범죄나 성매매, 도박 등과 같이 직접적인 피해자는 없으면서 외부에 흔적을 남기지 않아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범죄수사에 비교적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범죄를 수사하고 방지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수사기관이 오히려 함정을 만들어 수사의 신의칙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함정수사는 보통 범죄의사를 갖고 있지 자에게 범의를 유발케 하여 범죄를 교사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와 이미 범죄의사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범죄를 방조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로 분류한다.

기존 판례는 오랫동안 함정수사를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로 한정하고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보았으나 최근에는 범의유발형과 기회제공형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포함하여 함정수사의 의미를 넓게 이해하고 있다.

함정수사 위법성 판단 사례
함정수사의 위법성 내지 적법성에 대한 판단기준에 있어서, 종래 판례를 살펴보면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적법’하고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하여 함정수사의 대상자인 피유인자의 주관 내지 내심의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보아야 하지만 범죄의 종류,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방법과 그 자체의 위법성,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등 주관적 기준과 객관적 기준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ase 1
경찰관들이 순찰근무 중 공원 옆 인도에 누워 잠들어 있는 취객을 발견하고 이를 지켜보며 잠복근무를 하였다. 취객에게 접근한 피고인이 동정을 살피다가 공원 옆 화단 으슥한 곳으로 취객을 끌고 가 화단 옆에 있는 돌 위에 앉혀 놓고 취객의 오른쪽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려 했다. 그 순간 잠복 중이던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체포하였다.

판례는 경찰관들이 취객에 대해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잘못은 있으나 이와 별개로 피고인이 취객을 발견하고 스스로 범의를 일으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전형적인 기회제공형 함정수사에 해당한다며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07.5.31 선고 2007도1903 판결)

Case 2
A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함께 거주하고 있던 친구 B가 서울중앙지검의 정보원으로서 마약사범을 검거한 대가로 포상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A는 이전에 교도소에서 알고 지낸 피고인에게 10여 차례에 걸쳐 “아는 여자가 필로폰을 구입하려고 하니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계속 A의 부탁을 거절하던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C에게 필로폰을 매수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여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A에게 알려주었다. B는 A로부터 위 말을 듣고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관에게 전달하였고, 마약수사관이 필로폰을 매수할 것처럼 현장에 나타나서 피고인을 체포하였다.

판례는 유인자인 A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인 피고인을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하였을 뿐이고,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어서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07.7.12 선고 2006도2339 판결)

Case 3
경찰관들이 손님으로 가장하고 노래연습장에 들어가서 도우미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은 손님들에게 도우미를 불러준 적이 없다며 거절했다. 경찰관들은 노래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재차 도우미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도우미가 와서 함께 노래를 부른 후에 경찰관들은 피고인을 접대부 알선 혐의로 입건하였다.

판례는 경찰관들이 단속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도우미를 요구하였으나 평소 피고인은 도우미를 불러준 적이 없으며, 해당 노래연습장이 손님들에게 도우미 알선영업을 한다는 아무런 자료도 없고, 그와 같은 제보나 첩보를 가지고 단속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경찰관들이 피고인으로부터 한 차례 거절을 당하였는데도 다시 찾아가서 도우미를 요구함에 따라 도우미가 오게 된 점 등을 종합했을 때,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피고인의 범의를 유발케 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08.10.23 선고 2008도7362 판결)

판례는 주관적 기준과 객관적 기준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수사기관이 직접 관련되었는지 여부를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수사기관이 유인자가 되는 등으로 수사기관이 직접 개입했는지의 여부, 함정수사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 상당한 압박이나 강력한 유혹 등 적극적으로 유인한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함정수사가 위법한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