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명분 쌓기...군사목적의 '에칭가스' 북한 유입설? 
전문가들 “굳이 비싼 에칭가스로 우라늄 농축하겠나” 반박
서승만 | 기사입력 2019-07-10 12:37:26

[타임뉴스=서승만기자] 화학무기엔 저순도 불화수소를 쓰고 반도체사 주문과 입고량 철저 관리하기 때문에 북한유입설은 근거없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 에칭가스 등의 수출 규제 이유로 ‘북한 유입설’을 꺼내 들었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이를 “부풀려진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집권 여당 자민당의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간사장 대행은 지난 5일 “특정 시기에 에칭 가스 관련 대량 발주가 들어왔는데, 이후 한국 기업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며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에칭가스의 행선지가 북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에칭가스는 순도가 99.999%인 고순도 불화수소를 일컫는다.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웨이퍼를 깎는 ‘식각(에칭)’에 쓰여 에칭가스라 부른다. 

식각한 뒤 남은 찌꺼기를 제거하는 세정 용도로도 사용된다. 현재 에칭가스는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공업 등 일본 업체가 전 세계 수요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에칭가스는 일본 스텔라케미파, 모라타화학공업 등이 글로벌 공급량의 9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후성, 원익머트리얼즈 등이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마저도 일본 업체에 원재료를 수입, 합성 정제해 납품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구매 담당자들을 일본에 급파했다. 일부 업체들은 에칭가스 재고가 한 달 분량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영향이 있다. 세척 단계에서 에칭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폴리이미드의 경우 종류가 다양해 대체품을 찾을 수 있다”며 “에칭가스는 당장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감광제도 국산 제품으로 일부 대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확실히 긴급한 상황은 맞다”면서도 “반대로 생각하면 공급처 다원화할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동안 준비해온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반도체 소재 등의 개발을 우선 예산사업으로 선정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2020년부터 10년 동안 1조원을 투입하는 사업은 이미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
그런데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까지 거론하고 나선 일본의 수출규제 명분 찾기를 두고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불화수소가 화학무기 제조 등에 쓰이는 건 맞지만, 이 때 꼭 고순도의 값비싼 에칭가스를 사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에칭가스의 화학무기원료에 있어서 수소와 불소 원자가 하나씩 붙어 있는 불화수소는 물과 잘 섞인다. 때문에 사람이 가스 형태로 흡입하면 불화수소는 몸 안의 기관지와 폐에 있는 수분과 만나 독성물질인 불산으로 변한다. 폐 등에서 염증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불산에서 나온 불소 이온은 몸 안의 칼슘 이온과 결합해 체내 칼슘 농도도 낮춘다. 몸 속의 생체신호를 전달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칼슘 이온 상태에 이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여러 신경계가 손상된다.

불화수소는 핵무기의 핵심인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데도 쓰인다. 우라늄 광석을 불화수소로 녹이면 우라늄이 육불화우라늄(UF6) 형태로 변한다.

우라늄(U)에 불소(F)원자가 6개 붙어있는 화합물이다. UF6을 원심분리기에 넣어 돌리면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자연 속에 있는 천연 우라늄은 원자핵분열을 할 수 있는 우라늄235 비중이 약 0.7%에 불과하다.  핵무기로 쓰려면 우라늄 235 비율이 95% 이상 돼야 하는데, 이때 불화수소가 사용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독가스를 제조하거나 우라늄을 농축할 때 저순도 불화수소(순도 97% 안팎)를 사용해왔다”며 “굳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든 고농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실을 부풀렸을 수도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국내에 있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주문량과 입고량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에칭가스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에칭가스 2주분량...공장가동 멈출 수도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소재 가운데 영어로 에칭 가스라고 하는 불화수소는 현재로선 길어야 2주 정도밖에 못 버티는 상황이다.

어제 일본으로 급하게 달려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우선 불화수소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은 일정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불화수소 업체들을 우선 만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규제에 들어간 소재 3가지 가운데 불화수소 재고가 가장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화수소 재고 부족이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며, 생산 시설을 "길어야 2주일 정도 돌릴 분량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번 달 안에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사용하는 필수 소재로, 메모리칩 등 정밀 반도체 제조에 쓰는 기체 형태 불화수소는 일본 의존율이 44%다. 

변질 우려가 있어 오래 보관하기 힘든데다 일본 공급 업체 역시 그때그때 쓸 만큼만 수출했기 때문에 재고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타 아키라/보스턴 컨설팅 그룹 MD
"일본 소재 기업이 납품 관리가 철저해, 이른바 적시 생산 방식으로 납품을 잘해서 (한국) 재고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화수소 생산 시설이 있는 국내 업체에는 반도체 회사들의 다급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당장 고품질 제품을 만들기도 어려운데다 그나마 원료도 일본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소재 업체 관계자는"점검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술적으로 고순도의 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요." 

한국에 수출한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유입됐을 가능성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일본 정치인들 주장에 대해, 외교 당국은 "한국은 남북 대치 상황이라 전략 물자에 대한 국제 통제 체제를 가장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며 근거를 대라고 반박했다. 

일본 밖 우회적 경로 검토
일본발(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이 일본 밖 해외공장에서 ‘우회적으로’ 해당 소재를 들여오는 방법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목록에 올린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 리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는 기업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데 핵심 소재로, 최대 90%까지 의존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은 우리가 가진 리스트에서 가장 아프다고 느낄 1번에서 3번까지를 딱 집은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기업 입장에서는 재고를 최대한 쌓아두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사내 법무팀 등을 동원해 일본 이외에 대만·싱가포르에서 생산 거점을 보유한 스텔라에서 에칭가스를 조달할 수 있는지, 포토 리지스트를 생산하는 일본 TOK의 미국·유럽 등 해외 공장에서 소재를 들여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해외공장의 경우 본사의 지점 개념이 아니라, 현지법에 따라 현지기업 또는 정부와 합작 형식 등을 통해 별도 법인 형식으로 지어지는 경우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일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거래처 기업 간부를 만나 이 같은 우회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TOK의 경우 해외 공장을 통해 우회 방식으로 수입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확인했다"면서 "그외의 경우 아직 가능할지, 안 할지 불확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일부 기업이 이 같은 방식을 허용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에 핵심 소재 수출을 막으려는 의도가 이번 규제의 핵심인 만큼 정부가 어떻게든 ‘막는 수’를 내놓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대안’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법무법인 고우의 고윤기 대표변호사는 "해외공장이 있는 현지 국가에서 우회수출에 대한 규제가 없는지, 해당 해외공장이 수출할 때 본사의 통제를 어느 정도 받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국내 대형 회계법인 회계사는 "독립적인 법인 형태로 공장이 설립됐더라도, 한국 본사와 지분 관계가 있고, 본사가 해외법인에 대한 지분을 50% 이상 보유해 지배하고 있다면 하나의 실체로 보고 연결회계처리를 하는 만큼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 소재 업체들의 공장을 국내로 유치하는 방안마저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소재·장비업체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소재 국산화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해당 소재업체들의 공장을 국내로 유치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면서 "삼성·SK하이닉스가 투자하고, 정부가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방식이 돼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역시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가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해외로 못 나가는데, 이번 수출 규제 품목이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인 데다 일본 정부가 규제하기로 ‘콕’ 집은 품목인 만큼 정부 측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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