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 거부권 벌써 2차례"입법폭주 vs 입법방해" 강 대 강' 대치
안영한 | 기사입력 2023-05-22 08:06:42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연합뉴스

[영주타임뉴스] 안영한 기자 = 정치권 안팎에서는 '거야'(巨野) 주도의 직회부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계속 부딪치면서 '협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21대 후반기 국회에서 역대 가장 많은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여소야대 지형에 소수 여당이 법사위 관문을 지키는 상황이 빚어낸 결과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거야'(巨野) 주도의 직회부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계속 부딪치면서 '협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총선까지 21대 국회 남은 임기에 주요 쟁점 법안이 정상 절차로 처리되지 못하는 '정치 실종'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尹정부 1년 만에 '본회의 직회부' 역대 최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은 총 10건이다.

모두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나왔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등 더불어민주당이 처리를 주도한 법안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1대 국회 전반기(2020년∼2022년 상반기)에 직회부는 없었다.

역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문재인 정부 집권 초반기인 2017년 말 20대 국회에서 1건(세무사법)이 직회부됐지만, 이는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 따른 것이어서 지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쟁점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직회부' 카드가 활용된 것은 올해 1월 양곡관리법 사례가 사실상 처음이다.

국회법에 따라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하다. 이렇게 본회의에 오른 법안은 무기명 투표로 부의 여부가 결정된다.

21대 국회 들어 이런 절차를 거쳐 직회부된 법안 10건은 모두 부의 투표를 통과했고, 이중 표결을 거친 법안 7건은 모두 가결됐다. 국민의힘 반대에도 거야(巨野) 민주당이 주도하는 입법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이미 재의요구권을 두 차례(양곡관리법 개정안·간호법 제정안) 행사했다.

대통령이 재의 요구한 법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재적 299석 중 114석을 확보한 국민의힘은 자력으로 재통과를 막을 수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대통령 재의요구권이 거대 야당을 제어할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앞으로도 '무이자 학자금 대출법', '노란봉투법',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법' 등 야당이 강행 처리했거나 처리를 예고한 법안들이 적지 않아 21대 국회 나머지 1년간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998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거부권은 총 16회 행사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5년 임기 중 각각 7회, 6회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많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야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왔고, 내년 총선이라는 외생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도 '거부권 정국'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취임 후 두 번째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나 "개별법에 따른 특수성이 있는데, 그 특수성을 고려해 앞으로도 (재의요구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與 "野, 입법 폭주" vs 野 "與, 입법 방해"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이 동의할 수 없는 법안만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런 배경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함으로써 '독선'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최근 민주당을 향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잇속만 챙기겠다는 뻔뻔한 생각뿐"이라고 논평했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이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면 거듭 대통령에게 재의요구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별다른 견제 수단이 없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지만, '입법 폭주' 프레임을 민주당에 씌우는 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여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권에 불리한 쟁점 법안들 처리를 '고의적으로' 막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본회의 직회부라는 우회로를 통해서라도 입법부 의무를 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견해차가 너무 크면 다수결이 원칙 아닌가"라고도 했다.

민주당은 야당이 강행처리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라며 맞받아치고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최근 "거부권 정치로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 악재가 될 거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여권이 수적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거부권 카드를 쓰고 있으나, 여소야대 역시 민의가 반영된 결과인 만큼 거부권 행사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취임 1년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 회동 없이 거부권을 연이어 행사하는 윤 대통령 모습을 '불통'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게 선거 전략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야당이) 대통령에게 자꾸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자체가 정국을 얼어붙게 하고 민생까지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