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이다.
1927년 4월 9일 제주면 삼도리 김형수(金泂洙)의 집에서 김형수․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秀) 등 3명의 동지와 함께 무정부주의 사상의 연구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조직하였다.
동회는 매달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사회과학서적을 윤독하며 동지규합에 힘쓰는 한편 1927년 10월 소비조합을 결성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폈다.
이들은 1929년 5월 5일 독서회의 운영을 위해 우리계(宇利稧)란 조합을 결성하였다. 우리계는 표면상 우의돈목(友誼敦睦)․애경상문(哀慶相問)․생활향상을 표방하고 무정부주의적 이상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동계원에는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공무원․실업가와 도내의 유지들이 망라되었으며 계원들은 매월 3백원씩 회비를 은행에 예금하고 노자(老子)의 근(勤)․검(儉)․양(讓)의 사상에 따라 생활하기로 하였다.
동계는 특히 제주도의 전통사회에 바탕하여 무정부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점이 주목되는 단체였다.
이들은 1929년 9월 각 동리(洞里)에 야학을 개설하여 항일민족의식과 무정부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30년 7월 일경에 피체되었으며, 그는 1930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이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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