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우리고장 호국영웅 알리기 네번째 ‘김종갑 소장’
홍대인 | 기사입력 2016-03-22 22:07:31
[충남=홍대인 기자] 김종갑 소장은 1922년 10월 10일에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고, 연희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 훈련을 마친 후 1946년 1월 28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군단 작전참모와 참모장에 취임하여 전쟁에 참가한 그는 제9사단장을 비롯한 요직에서 복무하다 1952년 8월 1일 제5사단장에 임명되어 전선에 복귀했다. 당시 제5사단은 동해안 거진으로 진출하여 351고지를 점하고 있었는데, 351고지는 공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에 기필코 고수해야만 하는 요충지로써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이를 쟁취하기 위해 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제1차전을 종료한 장창국 전임 사단장으로부터 지휘권을 넘겨받은 김종갑 준장은 일부 부대를 해체하여 전력을 재정비했다. 제2차 월비산전투에서 실패한 적은 장기간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공격을 위한 특수 장비까지 갖춘 제9사단 제85연대의 증강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11월 9일 351고지를 공격해 왔다.

351고지를 방어하고 있던 제27연대 2대대 9중대는 일제히 돌격을 감행해 온 적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지만 적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함으로써 351고지를 적에게 넘겨주고 말았고, 이어 전개된 역습도 완강한 적의 저지로 실패했다.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351고지를 탈취한 적은 고지를 계속 확보할 목적으로 진지와 화력거점을 보강했다.

아울러 적은 다음날 1시 30분에 제1대대가 방어중인 345고지와 263고지에도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전황을 예의 주시하던 사단장 김종갑 준장은 제27연대만으로는 현 주저항선을 방어하면서 351고지를 탈환하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예비대인 제36연대 병력을 주저항선에 증원하기 위해 군단장의 결심을 얻어 사단장명을 하달했다.

351고지를 점령한 적은 345고지 · 195고지 · 154고지 등 도처에서 양공을 벌여 역습부대 병력과 지원화력의 분산을 꾀하면서 지휘관의 전황 판단을 흐리게 하는 동시에 351고지에 병력과 화력을 증강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351고지 탈환임무를 맡은 제27연대 2대대는 주저항선 방어임무를 제36연대 2대대에 인계하고 각 중대를 철수하여 대강리에 집결시킨 다음 장비를 점검하면서 세부 공격계획을 세웠다.

공격대대인 제6중대와 제7중대는 7시 10분에 지원 포격이 351고지 정상을 강타하는 가운데 저항선을 출발했다. 적진을 향해 전진하던 제7중대는 351고지를 점거한 후 진지를 보강하고 장애물을 설치한 적의 맹렬한 포격에 의해 3부 능선에서 진출이 좌절되었다. 중대는 대대 OP에 지원화력으로 적진을 계속 강타하도록 요청한 후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던 중 측방에 위치한 적의 기관총진지를 특공조가 제거했고, 그 순간 중대 주력은 적진으로 돌진하여 육박전을 전개했다. 이와 더불어 서남쪽에서 제6중대와 수색중대가 돌진하여 협공을 가하자 적은 10시 5분에 고지를 버리고 후퇴했다. 이렇게 하여 351고지는 피탈된 지 10시간 만에 제7중대, 제6중대, 연대수색중대에 의해 탈환되었다.

이 전투에서 사단장 김종갑 준장은 351고지가 피탈되자 적에게 재편성 및 진지 보강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과감히 역습을 단행하여 최소의 희생으로 적에게 최대의 타격을 가하며 고지를 탈환하도록 조치함으로써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정부는 1953년 5월 18일에 351고지탈환작전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제5사단장 김종갑 준장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경주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