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우리고장 독립유공자 알리기 세번째 ‘이종일 선생’
박정도 | 기사입력 2016-04-06 15:36:29
[충남=홍대인 기자] 이종일 선생은 1858년 11월 6일에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에서 태어났다.

1898년(광무 2년)에 최초의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했고 대한황성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고종황제의 탄신일(7월 25일) 경축기사에 ‘성수만세(聖壽萬歲)’가 ‘성수망세(聖壽亡歲)’로 잘못 표기되어 불경죄로 투옥된 적이 있었지만, 중상모략으로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1906년(광무 10년)에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 월보과장(月報課長)과 보성인쇄주식회사 사장직을 역임했다.

독립운동의 기운이 감돌던 1919년 2월에 오세창으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자신도 이 계획에 참여하여 민족대표로 서명하기로 결심했다.

2월 27일 그가 사장으로 있던 수송동의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공장 감독 김홍규에게 독립선언서 활자판을 가져오게 하여 이를 인쇄하도록 했으며, 이에 김홍규는 인쇄직공 신영구에게 이를 인쇄하도록 하여 그날 밤 11시까지 2만 1천 매를 인쇄한 후 이튿날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 중 2천 매를 보성사 간사인 인종익에게 주며 그 중 1천 5백 매는 전주 천도교구로 보내고 나머지는 충주로 보내어 밤중에 살포하도록 했다.

또한 그는 독립선언의 취지를 국내에 보도하고 독립운동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천도교 대도주 박인호 · 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장 윤익선과 더불어 독립신문을 발간하기로 협의하고 손병희와 함께 민족대표로 서명한 독립선언서 전말과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글들을 게재하여 3월 1일 자신이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한 후 배포했다.

이날 오후 2시 인사동 태화관에 손병희 등과 함께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자신이 인쇄한 약 100매의 독립선언서를 탁상에 놓고 이 자리에 모인 민족대표에게 회람케 한 후 함께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러다 출동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3년에 걸쳐 ≪한국독립비사(韓國獨立秘史)≫를 집필하여 발간했지만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경주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