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충남서부보훈지청 유승광, 나라와 백성을 구원해 낸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
홍대인 | 기사입력 2016-04-21 10:20:31
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유승광
[충남=홍대인 기자] 지금으로부터 424년 전인 1592년 4월 13일, 일본은 700여 척의 병선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다. 다음 날 부산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북상을 계속하여 수도 한성을 점령하고 함경도 지역까지 진출했다. 즉 우리가 일본에 병합당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때 극적으로 출현한 이순신 장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후 승전을 거듭하며 해상권을 장악하여 이미 우리나라에 진주하고 있는 일본군과 일본 본토 간 연락 및 물자 수송을 어렵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누명으로 인해 하옥되었다가 복임된 후 단 12척의 병선으로 적함 133척을 막아내는 극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거의 재기불능상태에 빠져 있던 우리 수군을 다시 일으키고 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극적인 승리의 원동력이 무엇이고 그 탁월한 리더십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여서 이러한 점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다.

몇 년 전에 시리즈로 방영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과 강력한 부하 단속 등이 그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 초반에 탈영한 부하의 목을 베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자리에 매달아놓는 장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드라마를 시청해나감에 따라 필자의 생각은 상당 부분 바뀌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종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조건 없이 베푸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부터 5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이러한 그의 면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이순신 장군이 북쪽 변경을 방어할 당시의 사례이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은 자주 우리 영토를 침범해 오는 여진족을 토벌했는데, 전사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하 한 명을 호되게 나무랐다. 좀 더 신중히 대기했더라면 부상자의 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부하가 대기 명령을 어기고 섣불리 공격을 하는 바람에 더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임진왜란 당시 부하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일본 장수들과는 대조적으로 부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둘째는 이순신 장군이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두기 전에 임금이 일본 수군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례이다.

이는 규율과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 상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로써, 이순신 장군은 당시 임금의 명령을 따라 섣불리 공격을 감행한다면 승전을 보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온 심혈을 기울여 양성해 온 수군을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트려 전 국토가 일본에 정복당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승전의 확신이 서기 전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며 대기했던 것이다.

당시 임금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본인 뿐만 아니라 가문의 생존까지 위협받는 일로써,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불특정 일반 백성들을 구원해내기 위해 그러한 위험까지 감수할 정도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셋째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 포로를 대하는 사례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적개심에 사로잡혀 일본군 포로를 고문하는 등 각종 가혹행위를 감행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그것을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본군 포로에게 “그 동안 가족과 떨어져 이 먼 곳에 와서 고생이 많았겠구만!"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술을 따라주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가하고 이미 대항할 힘을 잃은 일본 포로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자신의 신념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 · 한 민족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상 · 학벌 · 정치 성향 · 출신 지역 등 각종 요소에 따라 파벌을 형성하는 요즘의 세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례로써, 우리는 여기에서 각종 조건들을 뛰어넘은 이순신 장군의 보편적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다.

넷째는 노량진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은 사례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을 고국으로 순순히 돌려보내라는 임금의 명을 어기고 그들을 막아서며 마지막 혈전을 치렀다. 이는 바로 앞의 사례와 대조를 이루는 사례로써, 그는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내면 군을 재정비한 후에 다시 쳐들어올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했고, 그러한 추후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마지막 혈전을 택한 것이다.

다섯째는 노량진 해전에서 자살을 선택한 사례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2가지 중 하나의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 하나는 임금에 대한 항명의 대가로 이순신 장군과 그 부하들이 사형을 비롯한 중형에 처해지고 이순신 장군 가문도 무사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도성을 쳐들어가 정권 탈취를 시도하는 결과로써, 이는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적극 제안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전자는 당연히 자신이 아끼던 부하들과 가족들을 죽음 등 위험으로 몰아넣는 참혹한 결과이고, 후자 역시 자신이 온 심혈을 기울여 지켜 낸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결과이다.

그러한 결과들을 방지하고자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없어도 충분히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의 부하, 가족, 더 나아가 불특정 일반 백성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인간을 사랑했던 그의 면모를 애틋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의 5가지 애민 사례를 살펴보았는바, 당시 그가 이끄는 조선 수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음을 부정할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애민정신이 일제시대의 도래를 300년도 넘는 기간 늦추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여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하고 북한 · 미국 · 통일 등에 대한 국민공감대 여건 조성과 사회적 이념 갈등 해소를 통해 국민 통합과 튼튼한 안보를 이룩하고자 ‘나라사랑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1인 독재체제의 희생물이 되어 노예처럼 살아가는 북한에 동조하는 등 각종 위험한 사상들이 난무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나라사랑교육과 같은 정부 주도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애민정신이 결여된 나라사랑교육은 허황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국민들에게 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적인 사랑과 같은 애민정신이 결여되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한다면 이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애정을 갖기 힘들 것이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감행해 올 때 서둘러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려고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즉 아무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나라사랑교육을 제공해도 그 효력이 있는 것은 잠시 뿐이고, 교육이 끝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나라사랑정신 및 호국정신이 점차 희미해질 것이 분명하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아도 우리는 이러한 애민정신의 결여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이기주의, 학교 왕따, 학벌 · 사상 · 정치 성향 등에 따른 편 가르기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실시한 유럽 국가들 대상 설문조사에서 “전쟁이 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영국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영국에 3개월 간 거주해 본 필자의 느낌 상 영국 정부가 특별히 나라사랑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서라기보다는 영국인들이 자국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애정과 자부심 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며, 이러한 애정과 자부심 등은 근본적으로 타국인들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영국인들의 애민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라사랑교육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근간이라고 한다면 조건 없는 아가페적인 사랑과 같은 애민정신은 그러한 나라사랑교육이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애민정신은 이 나라와 국민을 지켜내고 우리나라가 안정적 바탕 위해서 성장해나갈 수 있게 하는 근간 중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각자의 생활에 바쁘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부족하겠지만, 사소한 요소들에 의해 화합하지 못하고 구성원 간 애정이 부족한 지금의 이 사회가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려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로 변모할 수 있도록 틈틈이 위에 열거한 이순신 장군의 5가지 애민 사례를 떠올려보며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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