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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김응택기자]대한민국은 그동안 ‘아기 수출국 1위’였다. 부끄러운 이름에서 벗어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정기간 동안 외국에 입양될 아기를 돌보아주면서 생활비를 벌던 주부도 있었다.
또한 입양되는 아기를 품에 안고 미국까지 데려다 주는 일로 돈을 벌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리나라의 국내 입양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아기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났다. 아동의 해외입양도 금지했다. 6월 26일 아주 오래 전 대한민국 부천에 태를 묻었지만 미국으로 입양 간 아이 2명이 부천을 찾는다. 그들은 34년, 46년 전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많이 자란 그 들이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가족을 찾고자 마음먹었다. 그동안 함께 입양되었던 사람들과 연락해서 모은 어린 시절의 자료가 있다. 하지만 가족을 찾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돌보지 못해 멀리 떠나야 했던 그들이 늦게나마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그들을 소개한다. 조민우(36세, 남) 씨는 형 조민수 씨와 함께 1981년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그의 가족은 1979년에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많이 아팠고, 엄마는 가출했다. 1981년 3월에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당시 이웃 주민들은 민우네 친척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결국 따듯한 이웃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홀로된 민우 형제는 부천시를 통해서 동방사회복지회에 연결됐고, 그해 9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미국인 민우’ 씨는 위스콘신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일리노이주 리버티빌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 그가 엄마를 찾을 확률은 아주 낮다. 하지만 그래도 그와 관계된 ‘누구’라도 찾고 싶은 그의 마음은 참 귀하다. “미국으로 입양된 후 저는 한국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미국생활에만 전념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제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한국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제 감정을 숨기는 게 더 편했으니까요. 지금까지 저는 제 입양과 관련해서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상처 받는게 무서웠습니다. 지금 저는 제 삶에 만족하고 있고,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희박합니다. 어머니를 찾아보겠다는 결정을 하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만나겠다고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만날 수 없다면 당신의 아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세요."이렇게 조민우 씨의 편지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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