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민 국회의원·허태정 전 대전시장·김제선 중구청장
[대전타임뉴스=홍대인 기자]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의 풀뿌리 민주주의 방향을 두고 ‘자치 3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5일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전자치혁신포럼’에서 장철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동구), 허태정 전 대전시장, 김제선 중구청장은 같은 ‘주민자치’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각기 다른 언어로 제도 취약성과 개혁 과제를 짚었다.
세 사람의 시선은 입법·조직·행정으로 갈라졌지만, “풀뿌리가 흔들리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민주주의는 모래성"이라는 인식만큼은 공통된 메시지로 모였다.
이날 포럼은 장수찬 목원대 명예교수와 곽현근 대전대 교수가 ‘대전광역시 마을공동체 기본조례’와 ‘대전광역시 자치구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제정 필요성을 발제하면서 문을 열었다.
대전공동체운동연합은 “두 조례가 대전 자치모델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틀"이라고 규정했고,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번 논의가 ‘대전형 풀뿌리 민주주의’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토론에는 장철민 의원, 허태정 전 시장, 김제선 중구청장이 나란히 앉아 지역 자치혁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드러내는 구도를 만들었다.
장철민 의원은 ‘룰을 누가 만드느냐’에 집중했다. 그는 주민자치를 단순한 참여 확대로 보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민주주의 시스템의 재설계"로 규정했다.
장 의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곳은 사실상 국회 하나뿐"이라며 “법이 조례에 위임하듯, 조례도 다시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가 스스로 만드는 룰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전고지제와 참여예산제 같은 제도가 집행 과정에서 좌초된 사례를 언급하며 “제도 내용뿐 아니라 ‘과정’을 제도화해 끊임없이 진화시키지 않으면 취약성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핵심 문제의식은 ‘선거 한 번에 후퇴하는 자치’였다. 장 의원은 “대선 한 번, 지방선거 한 번 지면 그동안 쌓아 온 제도가 싸그리 후퇴해버리는 경험을 수차례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권과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유지될 수 있는 주권적 공동체를 만들려면, 국회가 법의 틀을 열어주고 현장에서 룰을 세팅해 다시 법 체계에 환류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법·조례·현장 규율이 ‘한 방향으로만 내려오는 체계’에서 ‘현장과 상향 연결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법 철학을 분명히 한 셈이다.
허태정 전 대전시장은 ‘중간지원조직’과 ‘기초단체장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자신이 민선 7기 시정에서 내걸었던 ‘시민주권 시대’를 언급하며 “건강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대로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허 전 시장은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주민자치에 대한 각종 지원 정책을 회고하면서도 “중간지원조직이 5년, 10년이 지나면 1년 단위 사업 처리 기구로 변질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자성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책임을 떠넘기지 않도록 관리하고, 중간지원조직은 관성에 갇히지 않도록 스스로 혁신하는 이중의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주민자치회 전환 과정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허 전 시장은 “대전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바뀌는 과정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됐다"며 “간판은 바뀌었지만 멤버십과 의사결정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자치 성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기초단체장의 철학·의지’를 꼽았다. “구청장과 시장이 현장을 직접 점검하고 주민 자발성을 끌어낼 제도와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 주민자치는 형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마을공동체, 사회적 기업, 주민자치조직을 동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제선 중구청장은 ‘행정 패러다임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행정은 지금까지 법령에 정해진 일을 정해진 방식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이었다"며 “현장의 문제는 명료한데 부처·부서별 칸막이 구조 때문에 정책과 주민 체감 사이 괴리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능한 민주 정부라면 국민이 느끼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행정을 바꿔야 하고, 그 출발점은 주권자로서 효능감을 느끼며 참여하는 주민자치"라고 주장했다.
김 청장은 기후위기,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불안, 저출생·고령화, 양극화 등 네 가지 사회적 난제를 제시하며 “이제는 단선적 정책이 통하지 않는 복잡계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해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선택하고 해결 경로를 설계하는 구조가 아니면 어떤 정책도 지속되기 어렵다"며 “공무원이 의제를 정하고 주민은 시혜를 구걸하는 구조로는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석교동 도로 교통 문제를 주민·공무원 대화로 ‘주차 포켓 설치’로 풀어낸 사례를 들며 “20년 걸릴 도로 확장 대신 단기간에 해법을 찾은 것은 당사자가 함께 문제를 정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정 내부를 향한 메시지도 뚜렷했다. 김 청장은 공무원을 “월급만 받는 철밥통"이 아닌 “주민 문제를 가장 잘 알고 해결 방법을 돕는 조력 전문가"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중구는 주민자치회 시범 실시 조례가 계속 부결되고 있다"며 “국회와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를 소홀히 했던 30년의 역사가 있듯, 구의회와 시의회도 주민자치권을 무력화하는 경향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해 지방의회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통 단위 마을민회, 통장의 역할 전환, 동장 주민추천제와 예산 배정 실험 등 자신이 추진 중인 현장 실험도 언급하며 “법제화와 교육, 참여 확대가 동시에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 사람의 발언은 시선과 해법은 달랐지만 공통된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 첫째, 풀뿌리 민주주의가 대전 정치·행정의 ‘인프라’라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국회와 시청, 구청 권력이 아무리 바뀌어도 주민자치·마을공동체·사회적 자본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대전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린다는 진단이다.
둘째, 선거 결과에 따라 제도가 후퇴하는 ‘취약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란히 던졌다.
장철민 의원은 이를 ‘룰 세팅의 주권화’로 풀어갔고, 허태정 전 시장은 ‘지속 가능한 지원 조직과 동 단위 통합 체계’로, 김제선 구청장은 ‘행정 작동 방식의 대전환과 주민 참여 확대’로 해석했다.
차이점은 각자의 현재 위치와 역할에서 갈렸다. 장철민 의원은 국가 입법권에 몸담고 있는 만큼 법·조례·현장 규율의 위계와 구조를 핵심 의제로 삼았다.
그는 주민자치를 ‘입법 철학의 전환’으로 읽고, 국회가 틀을 열어주고 현장이 룰을 만들어 다시 법 체계에 반영하는 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허태정 전 시장은 과거 집행 경험을 바탕으로 중간지원조직의 변질 위험, 기초단체장 의지, 동 단위 현장 행정의 중요성을 파고들었다.
김제선 구청장은 현직 단체장으로서 부서 칸막이, 조례 부결, 통·동 실험, 공무원 인식 변화 등 구체적인 행정 현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전자치혁신포럼은 겉으로는 두 개의 조례 제정을 둘러싼 정책 토론이었지만, 속으로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대전 자치노선’을 조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입법·광역·기초를 대표하는 세 인물이 같은 문제를 각자의 언어로 진단한 만큼, 향후 대전에서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제도 손질을 넘어 정치·행정 전반의 재편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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