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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북북부보훈지청 김명식, 7.27휴전협정(休戰協定) 및 유엔군참전의 날에 즈음하여

충북북부보훈지청 김명식
[충북=홍대인 기자] 장마전선이 남북으로 오르내리면서 지역별로 불시의 천둥과 번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퍼붓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섭씨30도를 훨씬 웃도는 찌는 듯한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것이 요즈음의 날씨이다.

63년 전인 서기 1953년 7월 당시도 요즈음의 날씨와 큰 차이가 없으리라 짐작이 가는 바이다. 본격적인 삼복더위가 시작 되는 이 무렵 63년 전인 7월의 한반도는 날씨보다 더 뜨거운 휴전반대 궐기대회가 전개 확산되어 갔다.

북한 공산군은 서기 1950년 6월25일 미명에 당시의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고 사전에 철저하고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무력과 남한 내의 동조세력을 믿고, 적화야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전선에 걸쳐 기습적인 남침을 일거에 감행하였다. 천인공노할 6.25 사변을 도발한 것이다.

이로부터 한반도는 전화에 휘말려 수많은 고귀한 인명피해 및 천문학적인 재산피해, 동족이지만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는 정신적 피해 등을 입었다. 그 해독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 될 것이다.

63년 전 7월은 6.25사변의 해독이 심화되어 가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더해가는 시기이며, 또한 한민족이 원치 않는 휴전이 본격적으로 성립 될 시기에 해당하는 6.25사변의 끝 무렵이었다.

7.27휴전 협정조인은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정각 제159차 본 회의장인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장의 동쪽 출입구로 유엔군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중장 일행이 입장했고, 동시에 공산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 일행이 서측 입구로 들어와 착석했다.

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전문 5조63항의 협정문서 9통과 부본 9통에 쌍방 수석대표가 각각 서명하고 각방 선임장교가 그것을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 쌍방대표들은 입장하면서도 서로 악수도 인사도 없었고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사무적인 서명만 했다

10시 12분 서명을 필한 양측 수석대표들은 입석하자 잠시 시선을 마주했을 뿐 함구한 채 퇴장했다. 해리슨 중장은 2-3분간 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유엔기지가 있는 문산으로 떠났고, 남일도 소련제 지프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이로부터 3시간 후인 13:00 유엔기지내 문산극장에서는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그의 보좌관 들과 브리스크 미극동해군사령관, 앤더슨 제5공군 사령관, 웨이랜드 극동공군사령관, 테일러 미8군 사령관, 최덕신 한국군대표, 그리고 16개국 참전 대표들이 임석한 가운데 정전협정 확인 서명을 마쳤다.

한편 공산측은 김일성이 당일 오후10시에 평양에서 서명했고, 중국군의 팽덕회는 다음날인 7월28일 오전 9시30분에 개성에서 서명함으로써 정전조인 절차는 모두 끝났다. 이로써 3년 1개월 2일, 즉 1,129일 동안 지속된 6.25사변은 휴전상태로 들어갔다.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 내지 휴전(休戰)으로 우리는 이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즉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멈추어진 상태, 쉬고 있는 상태로 엄격하게 말하면 전쟁 중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휴전협정이 조인됐지만 북한의 휴전협정 위반은 부지기수로 협정 이래 현재까지도 위반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비근한 일례를 든다면 수많은 무장공비 침투 사건, 8.18도끼만행사건,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2차례의 연평해전에 관련한 사건, 최근의 목함지뢰사건 등 이루 열거하기에도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대남적화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전양면 전술 및 선전선동술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하고 있는데, 우리는 북한이 이번에는 어떤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처하며 또한 대북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대남적화와 일당독재 세습체제 유지를 위한 것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이것을 관찰만 잘하여도 최소한 북한의 전략전술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6.25사변 당시 만일 유엔군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숙고 해봐야 할 것이다.

사전에 용의주도하고 철저하게 남한의 적화를 위하여 전쟁준비를 한 도발자는 거의 무방비에 가깝고 국정이 혼란한 남한을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기세로 침략하여 단 사흘 만에 서울을 침탈하였고, 3개월도 못 되어 제주도 및 경상도 일부만 제외하고 남한의 전체가 공산군의 수중으로 전락되었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참전하여 전세를 역전시켜 대한민국을 수호하였다. 만일 그 당시 유엔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찌되었겠으며 63여년이 흐른 현재의 모습은 어떠하였을지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6.25사변 당시 대한민국을 도와준 유엔군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세계유수의 경제대국이 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도움을 준 국가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계속적인 우호관계를 지속해 나아가야 하며 어려운 처지에 봉착하면 필요할 경우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더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개선해 가는 길로 일로매진 하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며 자유와 평화를 애호하는 유엔참전국에 대한 도리 일 것이다.

7.27휴전 협정 63주년에 즈음한 요즈음 본격적인 삼복더위가 시작되어 찌는 듯이 더운데 63년 전 7월도 상당히 더웠으리라 추측해 본다. 피비린내 나는 37개월의 전쟁이 7.27휴전협정 결과 휴전선이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휴전선이 강고하여 끝없이 지속될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이 본래 없는 것이라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면 휴전선은 반드시 붕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하거나 불평불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미래의 희망을 갖고 휴전선이 붕괴되는 그 날을 대비하여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통일이 되려면 예고없이 다가오는 것으로 항상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63주년 7.27휴전 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에 즈음하여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홍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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