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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북북부보훈지청 이창기, 6.25전쟁 첫 전승 ‘동락전투’

[충북타임뉴스=홍대인 기자] 7월7일이 되면 충주시 신니면 동락초등학교 교정에서는 충북지역 내 6.25참전 국가유공자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첫 전승기념 행사가 개최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벌어진 동락전투는 당시 국군의 최초 전승지로 기록되어 대대원 모두가 1계급 특진할 만큼 엄청난 승리였고, 역사적 의미 또한 매우 크다.

동락전투는 북한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되자 위수지역인 강원도 춘천을 포기하고 충주. 음성 지역까지 철수한 국군 제6사단 예하 7연대가 적을 맞게 되었다. 당시 임부택 중령이 인솔하던 7연대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1대대를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와 음성읍을 잇는 도로에, 2대대를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 부용산 배치, 북한군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적군은 이곳 동락까지 침투 하였고 적의 탱크를 비롯한 수 많은 무기와 장비가 본교 교정에 집결함을 본 김재옥 교사는 피난도 가지 않고 적의 병력이 학교로 집결하자 국군은 다 철수하고 없다고 하여, 적을 안심시킨 후, 날이 어두워짐을 이용하여 4km가 넘는 험준한 부용산까지 가서 매복 중이던 국군 2대대 김종수 소령에게 3천여 명의 적군이 동락리로 진격해 학교와 주변 마을에 있다"는 정세를 알렸다.

이때 급박한 사안을 판단한 김종수 소령은 단독 공격명령을 시작으로 작전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신용관 중위가 이끄는 박격포부대는 적진을 향해 포탄을 사정없이 퍼부었다. 순식간에 적은 괴멸 직전에 이르렀고, 용원리 3대대와 동락리에서 2대대의 기습공격을 받은 적군은 아군의 용맹과 김재옥 교사 등 불과 400여명의 국군과 주민의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섬멸되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300여명으로 차량 75대(60대의 트럭 포함), 장갑차 4대, 포 54문. 적 사살 2,186명, 포로 132명에 달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군수품 1천200여점 노획이라는 크나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우리 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53명뿐 이었으나, 적군의 패전 보복으로 다수의 민간인이 사살 되었다. 이 전투에서 제7연대 전 장병에게 일 계급 특진의 은전을 내렸으며, 노획된 무기는 대전에서 시민들에게 전시되었고, 무기 1점씩은 UN본부로 이송하여 소련제 무기의 증거품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는 6.25전쟁이 벌어진 이후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됐다. 국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사기가 크게 저하된 상태로 계속해서 북한군에 밀려 남으로 후퇴를 거듭하였다. 그야말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동락전투의 승전보는 국군에 더할 수 없는 용기를 제공하는 전투였다.

국방부는 북한군의 위치를 제보했던 김재옥 교사의 반공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 전국에 걸쳐 상영했으며 동락 전투 당시 박격포 대장이었던 신용관 중위가 군을 제대 1968년 해양경찰 대장으로 재임 시 고인이 된 김재옥 교사의 충혼을 달래기 위하여 동락초등학교에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을 건립했다.

충북도에선 1973년 동락마을 4천여㎡의 동산에 전승비를 제막했고, 충청북도교육청은 6.25 당시 국군을 도와 북한 공산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김재옥 교사 기념관을 1989년 5월 16일에 준공하게 되었고, 그 후 전시실을 정비하여 1990년 7월 7일 동락 전승 기념일에 개관하였다.

충주시에서는 2016. 7. 7. 동락전승지 성역화사업으로 전승비 재건립, 상징조형물 설치, 공원 및 주차장 시설 등을 갖추었으며, 동락전투 전승비와 김재옥 교사 기념관 등 현충시설이 전후 세대들에게 국난극복과 애국애족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 계승시키는 산 교육장이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국군의 6.25전쟁 첫 전승지인 동락초등학교를 찾아 현충시설을 돌아보고 나라사랑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홍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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