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단양군 영춘면 온달산성은 대체로 복원이 잘되 있으며 출입구는 산아래 온달동굴을 오르내릴 수 있는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사진=단양군청 |
[단양=타임뉴스] 충북 단양 영춘면 사적 제264호인 온달산성은 삼국시대 산성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실지회복을 위해 출정한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사지라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관련 재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단양군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러한 온달산성에 대해 삼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쌓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학계는 물론 지역주민과 산성을 오르는 탐방객들 사이에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에 대해 온달문화축제추진위원회는 지난 제15회 온달문화축제 기념 학술대회를 열어 역사적 진리에 접근하는 시도를 한바 있다.
학술대회에는 모두 7명의 사학자가 학술 발표에 참가하였는데 이중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교수가 ‘온달과 온달성에 대한 검증’을 주제발표하면서 말미에 온달성을 축조한 나라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여 눈길을 끌었다.
결론부터 소개하자면 이 교수는 온달성을 축조한 나라로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있으면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신라를 지목하였다.
이 교수는 처음 구전이나 ‘여지도서’의 기록을 인용해 ‘바보 온달이 고구려왕의 사위가 되어 을아단을 지키겠다고 청하여 성을 쌓았다고’고 서두를 시작하였지만 이내 과학적 증거물들을 들어 이에 대한 부정을 시도하면서 신라 쪽에 손을 들어줬다.
즉, 성의 다락문(懸門) 구조의 출입문과 수구(水口), 성벽의 기단보축 시설, 출토유물인 굽다리접시(高杯)와 신라토기편, 기왓장을 두고 신라 축조 가능성을 주장했다.
같이 출토된 고구려계 화살촉에 대해선 온달성을 공격한 고구려군의 소지품일 것으로 설명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실지회복을 위해 아단성 아래에서 싸우다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는 온달의 전투 정황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고구려 축조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리를 펴면서 온달성은 북쪽 남한강변에서 보면 성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고북저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온달성이 남쪽(신라)을 방어하면서 북쪽(고구려)의 선박 출입을 관장하는 소임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북쪽 출입문이 폐쇄된 흔적을 두고 당초 고구려가 북쪽에 주 출입문을 두어 사용하다가 후에 신라가 성을 차지하면서 방어에 취약한 북쪽 출입문을 없앤 것으로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백제의 축조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해 2곳의 아단성(서울의 아차성과 영춘의 아단성)을 설정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백제일 것이라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전면 발굴이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로선 어떤 결정물을 내 놓을수는 없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해 심도있게 검토되고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성을 쌓았는가 하는 역사 추리의 문제는 탐방객들의 난상토론 몫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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