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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결코 망각(忘却)해서는 안 될 6.25사변(事變)

[기고] 결코 망각(忘却)해서는 안 될 6.25사변(事變)

[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명식] 해마다 6월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현충일과 6.25사변.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더구나 6.25사변은 발발한 지 71주년이 되었지만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날입니다.


71년 세월이란 웬만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기로 결코 짧지 아니한 세월로 당시 참전했던 대부분의 홍안흑발(紅顔黑髮)의 청춘은 어느덧 노안백발(老顔白髮)의 노인으로 변했으며 이미 상당수의 참전용사들은 유명을 달리하여 그야말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합니다.


상당한 세월이 경과하였음에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전쟁의 비참함과 참혹함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골수에 사무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6.25사변과 6.25전쟁 지금은 이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주로 사용하는 것은 6.25전쟁 이란 용어로, 차제에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보는 것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사변(事變)은 3가지 정도로 분류되는데 첫째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나 그 밖의 사건, 둘째 전쟁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 막을 수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셋째 한나라가 상대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로 정의되는데 6.25사변은 셋째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정유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의 역사가 있는데, 이는 임진년(1592년) 및 정유년(1597년)에 일본(왜)이 조선을 침략하여 난리를 일으켰으며,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은 정묘년(1627년) 및 병자년(1636년)에 청(호)이 조선을 침략하여 난리를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침입자의 주체가 어느 국가인지 알 수 있게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동란(動亂)은 폭동, 반란 전쟁 따위가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한때는 6.25동란이라 칭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戰爭)은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합니다.


사변과 전쟁의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하는데 제3자의 위치에서 보는 경우 전쟁이란 용어는 서로 국력이 대등한 국가에서 무력을 동원하여 싸우는 것으로 침입자가 불분명하며 모호해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6.25사변의 경우 을유해방(乙酉解放) 후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북한 공산도배는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할 무력을 증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약속받는 북한은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5년간의 무력증강을 바탕으로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사전에 선전포고 없이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최단시간 내에 한반도 전역을 적화하기 위하여 38선 전역에서 포화를 울리며 파죽지세로 천인공노할 남침을 개시했습니다.


6월은 신록의 계절로 산야는 온통 초록일색으로 대지에는 생명력이 넘치고 태양은 작열(灼熱)하는 연중 해가 가장 긴 달로서 보리가 익어 수확하는 때로 보리 수확 후 모내기 등 이모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농번기입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경제 상황이 열악했던 당시 시기인 농번기에 본격적인 농작물 수확이 끝나기 전 한반도를 적화하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하에 남침을 개시한 것입니다.


남침 개시 후 3일이 못 되어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으로 전락하는 미증유의 황당한 일이 발생했는데 북한이 사전에 준비 없이 남침을 개시했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7개월간의 동족상쟁 후 남은 것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천문학적인 경제의 손실, 국토 및 생산시설의 초토화, 수백만의 인명의 살상, 일천만의 이산가족 등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며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도 해결의 기미가 요원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민족이 외세에 의해 양단되어 오늘날까지 통일의 길은 요원해 보이는데 동족상쟁 후 총부리를 서로 간에 겨누고 피를 흘린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오늘날 남북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바, 그 모든 것은 6.25사변에 기인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6.25사변의 원인과 경과, 결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다시는 민족의 최대비극인 6.25사변 같은 유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국민 개개인도 6.25사변의 실상 등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며,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6.25사변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어 안보정신을 함양하는 계기로 삼아햐 할 거입니다.


6.25 당시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신명을 바친 유엔군 장병 및 자유와 국토수호를 위해 산화하신 참전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모든 참전장병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조은희 기자 조은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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