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중동 의존에서 벗어나 미국산은 물론, 서방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산 원유 도입까지 공식화하며 실리 외교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바흘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현지 언론 및 외신을 통해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 러시아 측 파트너들과 원유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중동발 공급망이 마비된 데 따른 고육책이다.
원자재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달 인도네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평균 2만 3천 배럴로, 지난달(10만 4천 배럴) 대비 무려 78%나 폭락했다.
실제로 사우디산 원유 200만 배럴을 가득 실은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페르타미나 소속 초대형 유조선(VLCC) ‘페르타미나 프라이드’호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어떤 국가도 공급처가 될 수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이미 지난달 미국과 최종 무역 협정을 통해 150억 달러(약 22조 3천억 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확정한 데 이어, 이제는 러시아산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다.
특히 미국이 최근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틈을 타, 인도가 이미 3,0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확보한 사례가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태국과 필리핀 등 주변 아시아 국가들도 앞다투어 러시아산 원유 도입을 검토하며 실익 챙기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재정난을 방어하기 위해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묶어두기 위해 공공 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지출 삭감 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에너지 전쟁 시대,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에너지 안보가 국가 존립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동맹이자 경제 파트너이면서도 필요할 땐 러시아의 손을 잡는 인도네시아의 ‘줄타기 외교’는 고유가 시대를 맞이한 자원 빈국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명분과 도덕적 잣대보다는 ‘국민의 난방비와 기름값’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각국 정부의 처절한 생존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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