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의회 하재붕 의원
오죽하면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고 정의했겠는가. 그만큼 인간은 만남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만남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도시민들은 바쁜 일상생활로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조차 관심이 없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곤 한다. 예전에 비해 이웃이란 의미가 크게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 넉넉해진 생활환경, 핵가족화, 속도전이 빚어낸 일상생활 속에서 이웃은 그저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씁쓸하다. 언뜻 보기엔 개인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굳이 이웃이 없더라도 생활에 불편할 것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속한 사회 안에서 그 규율에 의해 평생을 살아가기 마련인데, 당장은 주변의 간섭 없이 혼자서 사는 것이 편하고 행복하다 느낄지 모르나, 그건 잠시 동안의 사실상 일탈이며,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과 맞물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통찰해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계·두레·품앗이 등 이웃공동체를 통해 이웃과 더불어 더 값진 삶을 영위해 왔지 않았던가. 서로의 일손을 돕는 작은 것에서부터 유사시에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큰일까지 많은 일을 함께 공유해 가며 살아 왔지 않았던가. 이런 공동체적 삶은 결국 서로 이웃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물론 서로 믿음과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에 소통된 결과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遠水는 不救近火요 遠親은 不救近隣이라" 즉 먼데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구하지 못하고 먼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라는 성현의 가르침이 있다.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화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먼 곳에 사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한 경우가 많다," 라는 뜻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언론에서 독거노인 사망 소식이 종종 보도된다. 대부분 주위의 무관심속에 쓸쓸히 인생의 마지막을 맞고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는 일인데, 심지어 사망한지 한달도 더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런 사건은 이웃과 소통의 단절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이웃과의 소통 부재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우리는 이웃사랑, 공동체의식에서 찾아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우리 서로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같이 살아가야 된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일이야 말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본연의 인성회복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웃과의 만남이 좋은 사람과 말로 이어져 지극히 상생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그 사회는 아름답다. 상극으로 치달으면 상처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중심에는 상극의 불화가 도사리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우리가 비록 치열한 경쟁속에서 묻혀 살지만 때로는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겸허하게 되돌아볼 때다. 어느 날 문득 내 옆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손을 내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를 우리는 자칫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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