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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남부보훈지청, 9월 우리고장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

[충북타임뉴스=이현석] 충북남부보훈지청(지청장 임규호)은 ‘9월 우리고장 독립운동가’로 신규식 선생을 선정했다.

신규식 선생은 1879년 충북 문의군(현재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하여 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武德)을 쌓게 되었다. 신동(神童)으로 불리며 한학 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1910년 ‘보호’라는 양(羊)의 탈을 쓰고 있던 일제는 본색을 드러냈다. 경술국치(國恥)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통째로 그들의 입 속으로 삼켜졌다. 선생은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당시 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 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 송교인(宋敎人), 진기미(陳其美), 손문(孫文) 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하여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둘째는 3.1독립운동과 상해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선생은 1917년 조소앙(趙素昻), 박용만 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한 핀란드 폴란드 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 관 즉 정부의 조직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국내와 일본 등에 동지들을 밀파,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신규식 선생이 남긴 명저(名著) ‘한국혼(韓國魂)’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 망국(亡國)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 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현석 기자 이현석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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