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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실시된 민족말살정책 창씨개명의 역사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민족말살정책 창씨개명의 역사
[천안=김형태기자] <역사칼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욕이 성을 갈 놈이라는 데 성을 일본사람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는 韓民族(한민족)의 民族意識(민족의식)을 抹殺(말살)하고 징병제도를 실시할 준비공작으로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1940년 2월11일 한국에 창씨개명을 발포한다.

그리고 이에 불응하는 조선 사람에겐 등교, 입학의 거부, 취직의 불허 등 온갖 박해를 가하는 한편 치안을 해칠 우려가 있는 조선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투옥하므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세상이 어지럽고 민족의 운명이 깊은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음력설이 가까워질 무렵 특히 충청도부터 시작되는 창씨개명으로 세상은 온통 어수선했다.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어도 이름까지 빼앗을 줄은 차마 예상도 못했던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들부터 성을 갈게 압력을 넣었다.

약점을 내세워 협박을 하며 아무래도 우리가 일본의 한 영토인 바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도 일본인과 꼭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니 자연히 이름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준 성을 간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성을 갈지 않아도 학교에서는 일본식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성을 간 뒤에는 무엇을 또 요구할지 불안하고 성을 바꾸라는 데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됐다. 나라 없는 민초들은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오(南次郞)은 지원병제도를 징병제도로 바꾸는 정책으로 창씨개명을 강행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조선어 과목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케 한 후 이름까지 일본사람들과 같이 바꾸어 내선일체를 실현시킨다는 음모이다.

창씨개명하면 일본인과 똑 같은 권리를 가지게 되니 일본 국민으로써의 의무도 꼭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징병을 의무화 시켜 조선 젊은이들을 교착 상태에 있는 지나(중국)에 투입하여 전세를 승기를 끝내 버리려는 술책이다. 선총독부는 군사령부 헌병대가 창씨개명에 전념하도록 지시했으며 1년 내로 완수하도록 강조했다. 조선 민중들은 일본국민으로써 어깨를 펴고 살고 싶은 것이 진실한 염원이라 했다.

이름을 보면 반도인 이라는 것이 곧 알려져서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조상도 같고 얼굴 생김새도 비슷한 내지인과 반도인이 단 한 가지 다른 것은 그 성명 뿐 이다. 지금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어도 어려운 자격과 까다로운 수속이 필요 했지만 반도인 들의 절실한 요망에 창씨개명을 응하게 됐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에게 베푸는 천황의 은혜이다. 이제부터는 내선 간에 가로 놓인 최대의 장벽은 제거 되었다. 조선 사람도 일본인으로 출세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민족을 말살하는 최후의 쇠망치를 내리치면서 마치 가장 최대의 은전을 베푸는 듯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서슴치 않았다. 은전은 조선 민족에게 최대의 비극을 일으켰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날마다 군청에서 오라하고,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고, 헌병대에 불려 다닌 끝에 사상범으로 몰려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평생 햇볕을 보지 못하며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수시로 헌병과 군사들이 집집을 방문 탐문 수색을 하여 마음 편하게 살 수 없게 들볶아 대었다. 일본 황실의 글자를 모방하여 창씨 했다고 고문까지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창씨개명하지 않는 사람은 비국민이므로 교육 받을 자격이 없다고 집으로 되돌아 보내기가 일수였다.

1940년대에 8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각가지 음성적 박해를 가해갔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노골적으로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사정회에서 불합격 처리했다. 직장을 얻는데도 사정은 같았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성품이 착실해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면 비국민이라는 것이다. 기차에서 길에서도 검문을 하여 책임을 추궁하여 강제로 구인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창씨개명은 강제가 아니라 자의에 맡긴다고 내세우면서도 경찰서, 헌병대에 끌고가 다른 죄를 씌워서라도 골탕을 먹이려고 했다. 총독부는 애당초 내지인과 꼭 같이 대접하기 위해서 창씨개명을 권장한다고 했다.

창씨개명하면 일본인 행세를 하고 천대를 받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선전을 했다. 그런데 왜 갖은 박해를 가하며 창씨개명을 강제로 시켰느냐면 그것은 징병제도를 실시하여 이 민족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나가기 위한 준비 공작이기 때문이었다.

실로 창씨개명 정책은 이 민족의 족보와 이름을 영원히 없애 버리려는 일제의 가장 무서운 흉계였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창씨 개명한 87% 대한제국민들이나 창씨개명 당한 민중들은 친일사상을 가진 반 민족행위자들이 결코 아니다.

창씨 개명되어 지금도 학교마다 방치되어 있는 학적부, 졸업명부를 간이 복구 조치하여 치욕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창씨개명 치욕의 역사 잔재를 청산하는 간이복구 행정 조치작업을 단행해야 한다. 나라가 힘없어 빼앗겼든 성씨(姓氏)를 나라가 간이복구 조치로 이름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는 역사적 소명이다. 국치의 역사 잔재들은 상징적으로 청산해야 한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꼭 치러야 하는 청산과업이며, 민족독립 우리시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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