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첫날 관악산 정상에 올라 연주대를 바라보며 조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693m의 관악산 정상의 기암 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이 암자는 원래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 불렀다고 한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 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 번째 왕자인 양영대군과 두 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계승에서 멀어진 뒤 방랑하다가 이곳을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여서 붙여진 전설로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은 세평 남짓한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경기도지방기념물 제20호(설명 출처: 연주대 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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