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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가의 도덕적 모라토리엄 고찰

[칼럼]국가의 도덕적 모라토리엄 고찰
[사)환경행동연합 사무총장 박승민]
[타임뉴스= 박승민 서태안 Rrset]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지표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은 바로 ‘도덕의 모라토리엄’, 즉 국가의 윤리가 더 이상 스스로를 갚아낼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국가 재정의 부채는 통계로 계산할 수 있지만, 공직의 윤리와 사회의 책임이 파산한 순간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위기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부도의 형태다.

▶ 윤리의 통화가치가 붕괴한 사회

돈이 신용 위에 세워지듯, 국가도 윤리 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윤리의 통화가치가 붕괴된 사회다.

공직자는 공공선을, 기업은 공익을, 언론은 진실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다. 정부기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을 뒤집고, 자치단체장은 포퓰리즘과 보여주기 행정에 몰두한다.

국가의 중장기 정책은 ‘임기 내 실적’이라는 단기 이익에 포획되어, 인문학(철학)의 뿌리가 송두리채 뽑히고 있다.

그 사이 자차단체가 뿌린 수백억 원의 용역보고서와 타당성조사가 폐기되고, 시민의 세금은 정권의 홍보비로 소모된다.

공공기관의 부패, 언론의 자기검열, 진영에 따른 기업의 편승,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현상이다. 책임의 주체는 사라지고, 윤리의 무게는 제로로 남는다.

▶ 책임의 분산, 도덕의 해체

오늘의 사회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구조로 진화했다. 결정권은 여러 기관에 나누어지고, 책임은 그 사이의 틈새로 빠져나간다. ‘위원회’, ‘심의회’, ‘전문기관’ 같은 이름으로 책임의 실체는 이미 희석됬.

행정은 절차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기업은 법률 자문으로 도덕을 대체하며, 언론은 광고비로 독립성을 포기한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모라토리엄’ 징후다. 국가가 부채를 상환할 능력을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국가 자체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책임은 더 이상 죄의식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가 되었고,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 되었다.

▶ 권력의 풍향계와 언론의 장단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언론과 정치의 유착이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정책 홍보의 협력자로 기능한다. 광고·홍보비를 통한 재정 종속이 만연해지고, 정책 비판은 ‘비협조적 태도’로 낙인 찍힌다. 진실을 드러내는 대신, 권력의 ‘퍼포먼스’를 미화하며,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서사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다.

그 결과 시민은 진실에 접근할 길을 잃고, 국가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 능력을 상실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비판없는 도덕의 부채화다.

윤리가 더 이상 내면의 나침판이 아니고, 권력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풍향계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 국가의 부도는 경제가 아니라 양심에서 시작된다

경제의 파탄은 언제나 양심의 부도에서 비롯된다. 재정위기는 회계로 측정되지만, 도덕의 위기는 시민의 침묵을 먹고 자란다.

공직자는 책임을 회피하고, 언론은 진실을 포기하며, 시민은 분노 대신 체념을 선택할 때 그 순간 국가의 도덕적 모라토리엄은 현실이 된다.

오늘 우리는 수치상으로는 부국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도덕의 채무국이다. 그 증상은 명확하다.
정책의 철학은 없고, 윤리의 일관성은 무너졌다. 공공의 결정은 상수나 철학이 아니라 인기와 계산으로 움직인다.
야율초재가 말했듯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은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 일만 벌이다가, 해로운 일을 제거할 힘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다.

▶ 회복의 길 ― 정화 없는 혁신은 재앙

이 위기를 넘어설 길은 ‘개혁’이 아니라 ‘정화’다. 정화란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일이며, 잊혀진 윤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개혁은 제도를 바꾸지만, 정화는 마음을 바꾼다. 정화 없는 혁신은 재앙이며, 윤리 없는 정책은 폭력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잃어버린 양심의 회복이다.
윤리의 통화가 다시 신용을 얻을 때, 정책의 일관성도, 경제의 안정도, 사회의 신뢰도 되살아난다.

▶ 나가기= 절벽 위의 대한민국, 나침판은 어디에 있는가

사방이 절벽이라 해서 반드시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절벽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정하는 자리다.
국가의 도덕적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지 않으려면, 지금이야말로 양심의 나침판을 꺼내야 할 때다.

그 나침판은 제도 속에 있지 않다. 공무원의 서랍에도, 정치인의 공약집에도, 언론의 편집국에도 없다.
그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있다.

정직했던 시대의 기억, 부끄러움을 알던 공직자의 기억,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기억, 그 기억을 회복할 때, 대한민국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시 설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의 부도’를 막아낸 최초의 시민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남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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