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다큐멘터리 <꽃보다 향기로운 삶> 만든 조양분 할머니
김응택 | 기사입력 2015-12-28 17:10:33

[부천=김응택기자]연초, 다들 계획 하나쯤은 세웠을 것이다. 기왕이면 계획2, 계획10까지 세워보는 건 어떨까? 너무 욕심이 많다고?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작심삼일에서 최소한 작심백일은 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길!

글 임혜은(부천문화재단 문화교육․홍보팀), 사진제공 조양분

부천 꽃분이 할머니

요가, 오카리나, 사진, 수영, 컴퓨터, 영어, 영상촬영 그리고 반찬가게 아르바이트까지.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첫 수업을 듣고 10시에 귀가하는 조양분 학생. 고3 수험생보다 더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는 조양분 씨는 올해로 74세다. 노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며 버스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오늘도 가방 하나 메고 부천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사는 ‘꽃분이’ 할머니를 소개한다.

영상촬영 수업을 통해 달라진 삶

“영상촬영 수업을 들으면서 제일 많이 달라진 건 성격이야. 그전에는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떨기도 많이 하고…. 근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지. 나쁘게 말하면 뻔뻔한 거고,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야겠더라고."

조양분 씨는 ‘2015 노인영상미디어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부천시민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부천 시니어 멘토스쿨’ 영상촬영 교육을 받고 있다. 동영상 카메라를 익히고 촬영하는 것도 힘든데, 기획이다 구성이다 해서 수업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밥맛이 다 떨어질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지만 배워가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다큐멘터리 <꽃보다 향기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은 말이지, 공부하는 거야

<꽃보다 향기로운 삶>은 조양분 씨의 일상을 담고 있다. 배움에서 배움으로 끝나는 이 영상물을 통해 “나는 노는 시간이 아깝다. 몸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거동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그의 메시지를 활기차게 보여준다.

어디 이뿐이랴. 지금까지 만든 영상물만 총 5편. 그중 3편은 유튜브 동영상 사이트에도 올려 두었다. <은성이는 레고대장>은 손자 은성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겼다. 산만하고 떼를 잘 쓰던 손자가 레고를 배우고 나서 달라진 이야기, 10시간씩 집중해가며 만든 자동차를 보고 ‘폭풍감동’ 하는 할머니의 나레이션에 웃음이 절로 난다.

꽃분이 할머니의 24시간

맞벌이 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은성이를 돌보기 위해 부천으로 이사 왔다. 손자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컴퓨터 수업을 듣게 됐다. 한 가지를 배워보니 몰랐던 걸 알았다는 기쁨에 하나둘 신청한 게 8과목이 되었다. 수업 들으랴, 영화 만들랴, 컴퓨터 자격증 시험 준비하랴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사람들이 뭘 그렇게 배우러 다니느냐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야. 예전에 치매 체크리스트를 하는데 깜짝 놀랐어. 아는 단어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거야. 그런데 수업을 들으며 기억력이 되살아나더라니까.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야."

게다가 틈틈이 반찬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배우고 싶은 걸 배우니 금상첨화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식당이나 음식점에서 일해보라고 권한다. 사람 상대 하며 궂은일을 하다 보면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16년 계획은 또 ‘배우기’

조양분 씨의 올해 계획은 역시 ‘배움’이다. 하지만 영상촬영 수업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사진, 오카리나, 요가만 신청할 계획이라고. 촬영 수업은 어렵지만 가족과 친구, 이웃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소중한 보물을 안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가는 건강을 위해서 필수다. 요가를 배우면서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고, 목 디스크와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덕분에 영상미디어 전도사, 요가 전도사가 됐다고.

“앞으로의 계획요? 좋은 영화 만들어서 상 받아보는 거. 그리고 자식들한테 짐 안 되고 활기차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거. 갈 날에 대한 아름다운 준비를 해야지. 나중에 아파서 어딜 못 다녀도 영상작업은 할 수 있잖아. 그래서 배우는 거야.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해. 더 바라면 안 될 것 같아. 내 인생 최고의 순간? 그건 바로 지금이야."

고마워요, 할머니!

인터뷰가 끝나고 조양분 씨는 “나 같은 사람을 인터뷰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꽃분이 할머니를 만나서 고마운 건 나였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3개월이 넘어간다. 잦은 야근으로 슬슬 체력의 한계가 올 때쯤 내 머릿속에 향기로운 바람을 선물해 줬기 때문이다.

분홍색 스카프를 두르고 곱게 화장한 얼굴로 화사하게 웃으며 사는 재미를 들려주던 꽃분이 할머니의 꽃바람에 오늘 하루가, 앞으로의 일 년이 무진장 향기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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