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특집 기사 - 칠장사 가는 길
천여 개의 연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비의 향기
| 기사입력 2010-05-19 12:38:03

무채색과 유채색의 경계 속 빛바랜 단청의 멋

불단 없는 소박한 나한전, 회한마저 태우는 촛불

석가모니 탄생 2554주년,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한 ‘비움으로서 깨어있음’의 空사상은 지금도 삼라만상 세상 모든 일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안해 주기에 충분하다.



여행은 목적지의 도착도 중요하지만, 가는 길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집을 나서면서부터가 여행의 시작이고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지만, 존재가 저마다 제 몫의 뜨거운 삶으로써 끝까지의 긴 여정을 이어가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칠장사는 안성시민이면 한번쯤 가봤을 법한 안성시의 대표사찰이다. 허나 같은 사찰도 가는 이의 심리 상태와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은 천차만별. 욕망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고 2010년 5월의 칠장사와의 조우를 시작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17번 국도, 수도권에서 오든 충청권에서 오든 어디서 오더라도, 칠장사를 가기 위한 마지막 길은 17번 국도다.



적색 단풍나무가 눈을 한번 물들이고 다시 녹음의 벚나무가 눈을 씻어낸다. 적과 녹의 행렬은 2km 내내 계속된다.



그러다 잠시, 좌측으로 펼쳐진 꽃언덕에 시선을 빼앗긴다. 얼핏 보기에도 2천 평은 더 되어 보이는 너른 꽃밭이다.

우체통까지 갖춘 그럴싸한 모습에 잠시 이국적인 향수에 젖게 된다.



네비게이션으로 칠장사는 채 2km가 안 남은 상태, 이곳은 칠장사 가기전의 깜직한 에피타이저다.

이 넓은 밭에 꽃을 심는 이유를 안다 하여도 모른다하여도 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 마음대로다. 칠장사와 붙은 마을의 이름도 극락마을, 그렇게 조금씩 극락의 가까이에 있는 칠장사로 다가선다.



사찰은 흔히 명산의 품안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사찰의 터를 잡기 위해서는 산세와 지세를 함께 보았기 때문이다.



칠현산을 의지하여 자리 잡은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에 지장율사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안성에는 유독 미륵불이 많다.



마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투박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미륵의 아름다움은 끝끝내 오지 않는 은마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간곡한 믿음과도 닿아있다.



칠장사는 미륵을 주존으로 모시는 절이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안성에서 불교가 일찍 전래되며 동시에 미륵신앙도 멀리 퍼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륵 신앙은 미륵불의 출현으로 중생이 이승을 떠나 다시 정토에 태어나게 됨을 믿는 신앙이다.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면 그 때에 비로소 세상은 낙토로 변하고 사람의 수명은 8만여 세나 되는 억겁의 시간으로 영원을 살게 되는, 어찌 보면 실현 불가능한 ‘이데아’에 대한 유한한 인간의 동경이다. 현세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중생들은 자신의 삶을 한번에 구원할 ‘메시아’로서 ‘미륵’을 절절하게 원하였던 것이다.



칠장사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불자들을 맞을 채비를 끝낸 상태, 연등을 걸고 불자들의 이름을 써넣을 기와장도 준비하고 며칠 전에는 안성시 사회복지협의회에 장학금 2천5백만원도 기탁했다. 나누고 비우는 자비의 뜻을 지역사회에서 함께 실현한 것이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눈부신 오월의 햇살아래 걸린 연등은 어떤 꽃보다도 화려하다.



나한전으로 올라서니 투박한 계단 옆으로 ‘소원성취’라고 쓰여진 촛불들이 이미 제 몸을 다 태워 바닥에 누운 상태, 더 이상은 비워버릴 것이 없다는 듯 욕망의 이름을 게워내서인지 그 그림자마저도 흰색이다.



투명한 유리 안으로 삼천배를 하는 보살들의 모습이 싱그럽다 못해 안쓰럽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린 가벼운 초가 되기를 바라는 양, 스러지고 또 일어나 스러지고 있다.



‘산다는 것은 조용히 제 몸을 흔드는 제 울음’이라던 박경림의 시처럼, 지치고 병든 중생들은 삶은 이곳에서 치유받고 조심스럽게 새살을 내고 있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 나한은 아라한(Arhan)의 약칭으로 아라한은 깨달은 자, 곧 성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부처에게는 본디 16인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고 부른다.



나한전은 대웅전과는 달리 좁은 폭의 불단을 배치하고 불단에 장식을 하지 않으며, 절집을 소박하게 짓는다.



고사찰에 전설 한두 개쯤 깃들지 않은 곳이 있을까? 천년쯤 흘러온 시간 속에 많은 사람와 사연들이 지나갔을 터, 칠장사도 예외는 아니다.



칠장사의 빛바랜 단청은 무채색과 유채색의 분기점에 있다. 유달리 전설이 많은 이곳은 알려진 대로 홍명희의 ‘임꺽정’의 배경지이기도 하며, 궁예가 13세까지 유년기를 보내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또한 조선시대 32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칠장사를 찾았다가 몽중등과시(夢中登科時)를 했다는 박문수처럼 칠장사의 세월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꿈속에서 알려준 문제 그대로 보는 시험이라니, 큰 시험을 앞두고 중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법 하다.



게다가 칠장사에는 유독 각종 문화재와 보물이 많다.



청동범종, 오불회 괘불탱화, 삼불회 괘불탱화, 칠장사 혜소국사비 등 귀한 유물들이 잘 보존된 곳이다.



또한 못지않게 유물도 보물도 아니지만, 귀한 것들도 많다. 거북바위, 숲속의 다람쥐, 대나무 밭, 대나무밭을 지나오는 삼베적삼 스치는 바람소리, 칠장사 문화재 지킴이 견공, 칠칠이와 해탈이등 고사찰의 멋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사위(四圍)는 발자국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함으로 열리고 지구 저편에서 온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바람결에 따른 풍경소리, 그리고 다시 고요함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생경한 공중의 소리가 존재를 오롯하게 밝혀준다. 세상일에 찌든 머리를 멈칫 쉬게 한다.



불자이든 아니든, 등산객이든 관광객이든 칠장사는 고요함의 자비로 곁을 내어준다.



고사찰의 미덕이다.



사찰에 가는 것은 유희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깊은 휴식이 있다. 그래서인지 불자들은 깊은 휴식을 맛을 알만큼의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삶의 지난(至難)함을 알아야 그 후에 종교도 스스로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번 주 부처님 오신 날이 너무 붐빈다면 다음 주도 괜찮다. 잔치가 끝난 고사찰을 마주하는 것도 꽤 괜찮은 체험이다. 칠장사만 둘러보는 것이 허전하면 칠현산까지 올라봐도 좋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속의 거친 ‘못’ 하나 조용히 어디쯤에다 두고 온 듯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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