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보훈지청, 떠나면 보이는 선열들의 역사향기 우리고장 보훈현충시설을 찾아~③<면암 최익현 선생>
홍대인 | 기사입력 2014-03-05 11:23:06
[충남타임뉴스=홍대인 기자] 홍성보훈지청(지청장 이태용) 나라사랑 연구모임은 5일 세 번째 탐방활동으로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절개가 숨쉬는 모덕사를 찾았다.

청양읍에서 동쪽방향으로 자동차로 20분정도 달려 칠갑산 고개쉼터를 지나서 공주쪽으로 10여분 정도 더 가면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일제에 의해 대마도에 끌려가 죽기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당이 있는 모덕사를 관람할 수가 있다.



최익현은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로 1855년 23세의 나이에 병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승문원에 임명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36세에 사헌부 장령에 임명되니, 이때는 흥선대원군 집정시기로 대원군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으로 사회적 민폐가 커 최익현은 시폐4조의 상소를 올렸으니, 바로 토목 역사중지, 수렴정치 금지, 당백전 혁파 등이었다.

최익현은 본래 경기 포천사람인데 충남 정산에 이거하여 거주하던 중 1905년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임병찬과 함께 1906년 노구를 이끌고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니, 이는 전북지역 최초의 의병이었고 집단적 항일 투쟁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1906년 봉오창의는 유림을 대표하는 최익현이 맹주로 추대됨으로써 의병운동의 전국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병오의병은 패하였고 최익현은 대마도로 압송되었는데, 이곳에서 최익현 선생은 적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 후 순국하였다.

그의 시신을 실은 배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그의 죽음을 대도하니,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나라가 시작된 이래 사람이 죽었다고 이렇게 슬퍼한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칠갑산 고개마루에 면암 동상이 있고, 선생의 묘소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산21번지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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