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하메네이 사망] ‘신의 대리인’에서 ‘폭사의 비극’으로… 하메네이, 피로 쓴 37년 집권사

[하메네이 사망] ‘신의 대리인’에서 ‘폭사의 비극’으로… 하메네이, 피로 쓴 37년 집권사

2020년 1월 9일 당시 하산 로하니 대통령(왼쪽)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에스마일 가니와 함께 앉은 재판매 및 DB 금지][
1986년 1월 13일 파키스탄 방문한 하메네이(가운데)[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탄불 타임뉴스= 이남열 기자] 2026년 2월 28일, 이란 신정체제의 정점이자 중동 반서방 전선의 맹주였던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6)가 미·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37년간 이란을 통치해온 그의 삶은 혁명의 투사로 시작해, 전 세계를 전율케 한 철권 통치자로 끝을 맺었다.

1939년 성직자 가문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현대 이란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혁명의 파트너,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제자로, 팔레비 왕조에 대항하다 6차례나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불굴의 생존자, 1981년 대통령 후보 시절, 녹음기 폭탄 암살 시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다.

권력의 정점, 19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종신직인 최고지도자에 등극, 사법·군사·언론을 모두 장악하며 이란의 모든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신의 대리인’으로 군림했다.

하메네이는 때때로 핵협상(JCPOA)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거나 문학에 심취하는 등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자유주의’와 ‘미국적 좌파’를 제거 대상으로 삼아 가혹한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민중의 분노’였다.

2022년 히잡 시위,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로 촉발된 시위를 강경 진압하며 국제적 비난을 샀다.

2025-26년 유혈 참극, 누적된 경제난에 폭발한 반정부 시위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동원해 무차별 진압했다.

외부 추산 최대 3만 6,500명이 사망한 이 참극은 결국 미국의 군사 개입 명분이 되었고, 그의 명을 재촉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하메네이는 심복 알리 라리자니를 대리인으로 지명했으나, 그의 폭사로 이란은 거대한 권력 공백에 직면했다.

강경파의 부상, 후계 구도가 확립되기 전, IRGC 출신의 군부 강경파들이 정권을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체제 붕괴의 서막, 최고지도자의 사망은 1979년 혁명 이후 유지되어온 신정체제 자체가 붕괴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메네이는 생전 “핵무기는 인류의 위협”이라며 파트와(칙령)를 내리기도 했으나, 정작 본인은 핵을 카드로 서방을 위협하고 자국민의 목소리는 총칼로 눌렀다.

한 시대의 독재자가 사라진 자리는 평화가 아닌 거대한 폭풍전야다.

그가 지키려 했던 신정체제는 그가 뿌린 피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트럼프의 공습이 하메네이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모르나, 그 사후에 닥칠 중동의 혼란은 이제 전 세계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37년 철권통치의 종말은 역설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중동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연보 및 주요 사건]

1939 | 출생 | 이란 마슈하드 성직자 가문 |

1979 | 이슬람 혁명 | 팔레비 왕조 폐지, 이슬람공화국 수립 기여 |

1981 | 대통령 취임 | 암살 시도 생존 후 3대 대통령 등극 |

1989 | 최고지도자 등극 | 호메이니 사후 권력 승계 (종신직) |

2022 | 히잡 시위 진압 | 마흐사 아미니 사망 후 전국적 시위 강경 대응 |

2026 | 미·이스라엘 공습 피격 | 테헤란 거처에서 폭사 (86세) |

이남열 기자
<저작권자 © 타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 기능은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