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의 독립운동가, 안태국 선생
조은희 | 기사입력 2022-04-01 10:48:32

[충북타임뉴스=조은희]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태국 선생을 ‘2022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국권회복을 위해 조직한 신민회의 주역으로 활동한 안태국 선생은 계몽운동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학교설립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후 신민회 활동을 와해시키기 위한 105인 사건으로 구속되어 투옥되었다.


안태국 선생은 1877년경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촌 유생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07년 9월경 안창호의 권유를 받아 신민회 창립회원으로 가입하고 총감으로 임명되었다. 선생은 신민회 기관지 역할을 하는 '대한매일신보' 평양지사장의 일도 도맡았으며, 대성학교의 육성을 위해 후원회장 격인 찬무원으로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1910년 11월 ‘안악사건’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이후 ‘데라우치(寺內) 총독 암살 음모 사건’으로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재기소됐다. 안태국 선생은 공판 중에 정확한 기억과 물증까지 제시하면서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건’이 날조된 것임을 논리정연하게 폭로하여 일제 재판부를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1912년 9월 28일 ‘105인 사건(신민회 사건)’의 최고형인 10년 징역을 선고 받았다.


안태국 선생은 1915년 2월 13일 투옥된 모든 인사들과 함께 투옥된 지 5년 만에 풀려났다. 선생은 1916년 가족들을 이끌고 북간도 혼춘(琿春)으로 이주하여 새 근거지를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하였고, 북간도 지역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장도에 오르기 전에 갑자기 장티푸스에 걸려 1920년 4월 11일 적십자 병원에서 순국하였다.


선생의 장례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고 1920년 4월 14일 상하이 정안사로(靜安寺路) 외국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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