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 차질이 플라스틱 가공품 생산 공정으로 전이되면서, 종량제 봉투와 식품 용기 등 생활 밀착형 제품의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3일 플라스틱 가공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업체로부터 원료를 먼저 받고 가격은 한 달 뒤에 확정하는 ‘후불제’ 구조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이미 톤(t)당 최대 40만 원 인상을 통보받은 데 이어, 이달에는 추가로 60만 원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종량제 봉투의 주원료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불과 두 달 만에 톤당 100만 원 가까이 치솟았다.
특히 조달청과 장기 계약을 맺는 종량제 봉투의 경우, 급등한 원가를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하기 어려워 영세 업체들이 아예 납품을 포기하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우려된다.
물량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동에서 출발한 원료가 국내에 도착하기까지 약 25일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 초기 발생한 수급 차질이 이번 달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 시내 일부 대형마트에는 종량제 봉투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전체 가공업체의 80% 이상이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인 점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원룟값 상승이 한두 달만 지속돼도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플라스틱 의존도가 높은 패션과 뷰티업계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패션업계,LF와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주요 기업들은 이미 도입한 종이상자 포장 시스템과 친환경 포장재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중동 전쟁 이후 종이 포장재 관련 문의가 평소보다 30~4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뷰티업계, 대기업은 재고 비축과 공급망 다변화로 버티고 있으나, 플라스틱 튜브 등을 사용하는 중소 화장품 업체들은 이미 생산 차질 공문을 받는 등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애경산업 등은 재생 원료 사용과 대체 소재 적용 가능성을 적극 검토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우리 집 앞 마트의 종량제 봉투 수급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경제의 초연결성을 실감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검토 등 긴급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탈플라스틱'과 '공급망 다변화'에 있다.
이번 위기가 우리 산업계의 체질 개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장기 침체의 서막이 될지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댓글
댓글 기능은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