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 75주년 광복절(光復節)에 즈음하여
이현석 | 기사입력 2020-08-07 16:18:52

[타임뉴스 = 이현석] 8월 하면 생각나는 것이 광복절, 입추, 말복, 처서 등이 될 것입니다. 국치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생소할 할 것이라 추측됩니다. 금년도 8월은 아직 8월 초엽에서 중엽으로 들어가는 시기이지만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어 언제 끝날지 예측을 불허합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2020년 8월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광복된 지 어언 75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해에 태어난 소위 해방동이도 만 75세가 되는 해입니다. 결코 짧지 않는 세월로 웬만한 사람의 평생에 가까운 세월이며 강산이 7번 바뀌고도 반이 더 바뀐 세월입니다.

그 세월 동안 국권을 상실한 지 만 35년 만에 광복이 되었고 그 후 그 배가 넘는 만 75년의 세월이 흘러 세월이 물 흐르듯 빠르고, 또한 정처없이 흐른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을유해방(乙酉解放)이 되고 이어서 남북분단, 6.25사변, 전후복구, 경제개발, 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이 되어 지난 그 어느 시대보다도 번영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북의 극한 대결은 6.25 사변의 시련을 극복하면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변모해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동안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 없습니다.

광복 후 현재까지 남북을 비교해 보면 체제의 경쟁은 어느 쪽이 우월한지 승패가 가름난 지 한참이나 지나서 비교 자체가 지금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금년 8월 15일은 제75주년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되고 우리는 일제 치하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어 세계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일제 치하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光復節)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여기에서 광복(光復)이란 “빛을 되찾는다”라는 뜻으로 상실된 국권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광복절은 경축 행사로 전 국민이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일이기에 국경일로 지정하여 광복절의 의미와 뜻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은 한집도 빠짐없이 가가호호 태극기를 게양하여 경축일 개념의 광복절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기려야 할 것입니다.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화(國化)는 국가를 상징한 꽃으로 우리의 경우 무궁화(無窮花)가 되겠고 국가(國歌)는 국가를 대표하는 노래로 우리의 경우 애국가(愛國歌)가 해당이 됩니다.

국기(國旗)는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 우리의 경우는 태극기(太極旗)가 해당되는 것으로서 대한민국이 당당한 주권국가임을 또한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권이 상실되면 태극기 자체를 게양할 수 없는 것임은 일제 치하 36년을 통하여 충분히 주지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태극기를 경축일에 게양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재고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태극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명식
태극기는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 조인식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태극기 제작자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조미통상수호당시 조선 대표인 김홍집이 통역을 맡은 이응준에게 태극무늬와 4괘로 국기를 제작하게 했다는 설인데 당시 청나라 특사는 조선은 청의 속국이기 때문에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와 비슷한 청운홍룡기를 게양할 것을 강요했지만 김홍집은 이를 거부하고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설은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올 때 고종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선상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여 사용했다는 설입니다.

처음 제작 당시에는 당시의 국호가 조선으로 “조선국기”로 불렀습니다. 그 후 1897년 고종황제가 “달력은 명시력(明時靂), 국기는 태극기, 즉위일은 개천기원절(繼天紀元節)”로 한다고 천명함으로써 조선왕조의 국기명칭이 비로소 태극기로 정식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극기라는 명칭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부터인데 당시만 해도 일본은 태극기보다는 조선국기로 알고 있어서 국기 이름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는 흰 바탕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문양과 색깔의 의미를 살펴보면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중앙의 태극문양은 음(파란색)과 양(빨간색)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 한 것입니다.

네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 중에 건(乾)괘는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坤)괘는 땅을, 감(坎)괘는 물을, 이(離)괘는 불을 상징합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상징 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경지를 담아낸 태극과 팔괘를 사용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제 75주년에 광복절에 즈음하여 우리의 선인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한 우리의 국기와 그 속에 담겨 있는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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