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봉길 의사 홍구공원 의거 제 89주년에 즈음하여
조은희 | 기사입력 2021-04-28 13:23:57

[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명식]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은 “장부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매헌 윤봉길 의사가 독립을 위해 만주로 떠나기 전 하신 말씀으로 비장감과 숙연함을 느껴지게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문구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조국광복에 대한 열의가 충천하고 동포에 대한 사랑이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약관의 나이에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범인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1932년 1월 상해사변을 연이어 도발하며, 대륙으로 진출한 일본은 이를 기념하고자 일왕의 생일(天長節)에 맞추어 중국의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에서 전승 축하 관병식과 일왕축하 행사를 계획합니다.

채소 장사를 가장하며 일본군의 감시를 따돌리고 정보를 수집하던 윤봉길 의사는 이 날짜를 거사일로 삼고, 김구 선생을 찾아가 물통 폭탄(일본수뇌부 제거용) 및 도시락 폭탄(자결용)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의거 당일 김구 선생과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합니다. 윤봉길 의사가 6원을 주고 샀다는 시계를 김구 선생의 2원짜리 시계를 바꾸자며 “제게 남은 시간은 이제 1시간밖에 소용없습니다” 한 이야기입니다. 김구 선생은 목이 메이며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홍구공원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는 11시 50분경,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끝나갈 무렵, 이때를 기하여 윤봉길 의사는 기념식장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였고, 천지를 진동할 굉음과 비명으로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일본 육군대신을 역임한 시라카와 (百川義則)대장((사망), 해군 제3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 해군 중장(우안 실명), 육군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육군중장(좌하지 절단), 무라이(村井倉松) 주중 총영사(부상),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주중공사(우하지 절단), 가와바타(河端貞次) 거류민단장(사망) 등 8명의 군인 및 관료들이 사상(死傷)되는 장쾌한 성과를 거둡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에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18일 일본 오사카 위수형무소로 이동되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로 순국합니다.

이 거사는 단순히 조선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거사 당일 현장에는 많은 군중들과 기자들이 있었고, 의거 소식은 급속도로 세계 각국으로 전파됩니다.

특히 중국에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1931년 일본이 획책한 만보산 사건으로 한중 농민들간 생긴 분쟁으로 불편한 관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고, 국민당 총통 장제스(蔣介石)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며 극찬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해주기 시작하여 해방 전까지 지속되었으며, 침체기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만난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의 삼자회담에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주장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25세의 나이로 일본의 전승 및 일왕생일 축하일 기념시장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침략자의 수괴들을 사상케 하고, 순국한 매헌 윤봉길 의사,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인적이 드문 가나자와시 공동묘지 한 모퉁이에 봉분 및 표식없이 평장으로 안치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 끔찍하고 잔인한 야만적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윤봉길 의사의 민족과 동포를 위한 거룩하고 숭고한 뜻을 숨기고 또한 왜곡하고, 윤봉길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이 독립운동의 성지도 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야만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자행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해방 후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한 유해 발굴작업도 유해를 표식이 없는 평장으로 알 수 없게 해놓아 유해 찾기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여차하면 일본은 독도침탈 야욕 및 역사 왜곡 등의 도발을 부단없이 자행하는데 일본을 경계하고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하여 대책을 강구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윤봉길 의사의 뜻을 망각한다면 치욕의 역사가 재현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력이 쇠약해지면 인접국에서 때를 불문하고 도발하여 비극의 역사가 재현될 것으로 가슴 깊이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의 장쾌한 의거를 상기하며, 국권의 상실기에 조국의 광복과 동포를 위하여 초개와 같이 신명(身命)을 바친 고귀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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