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복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마음으로 흠모하고 행을 따르라.
김형태 | 기사입력 2014-11-21 15:52:11

[서울=김형태기자]

'사진출처_ㅎ스님 (익명으로 처리되길 원함)'

<고세유복 故世有福 염사소행 念思紹行> 세상에 복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마음으로 흠모하고 행을 따르라.

복이란 내가 갖고 싶어 갖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허락이 있어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복있는 사람이란 하늘의 뜻이 함께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하늘에는 하늘의 법이 있고 땅에는 땅의 법이 있다. 사람이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다면 땅의 법도 따를만 하겠으나 영원한 것은 하늘의 것이고 신 외에는 없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훌륭한 성인들이 있었고, 지금도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가 땅의 소산인 세상의 지식을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된 사람들이다.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라야 온전한 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으뜸의 가르침이다. 宗敎(종교)의 한자를 보면 ‘宗 하늘의 것을 보고’, ‘敎 아버지에게 효도한다’ 는 뜻이다.

각 종교의 경전을 가르치고는 있으나 온전히 알지 못해 일부만 가르치고 일부는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한 세상의 지식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만큼은 신의 성품을 닮기위해 노력하고 그로 인해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이들도 있다. 세상에서 그들을 성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이 땅 대한민국에도 최근 작고한 성철스님과 김수환추기경이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땅의 것인 세상의 지식으로는 하늘의 것인 신의 말씀 곧 신의 생각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문자적인 해석으로는 문자가 담은 형상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도와줄 뿐 그 안에 담긴 신의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다. 이는 그 뜻을 기록하여 세상에 전해준 신만이 알고 계시니 신께서 택하여 그 가르침을 전해 받은 ‘신의 사자’만이 온전히 알 수 있겠다.

‘신의 사자’는 아니나 종교인으로서 세상을 이기기 위해 늘 노력해온 불교계의 성철스님에 관한 일화를 전한다. ‘신을앙망하는자’ 로서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출 수 있어야 하겠다.

<성철스님 일화>

성철 스님은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 위한 결사의 장소를 물색하다 경북 문경 봉암사로 결정했다. 당시 봉암사는 초라한 절이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산 자락, 양지 바른 명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봉암사는 지금도 조계종 특별 종립선원(禪院)으로 참선하는 스님들만 모여사는 곳이며 일반인은 부처님 오신날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엔 들어갈 수 없다.)

처음 결사를 시작한 초기 멤버는 성철 스님 외에 우봉.보문.자운 스님까지 모두 네 명에 불과했다.

청담 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伽倻叢林)의 틀을 잡는다고 바빠서 '결사' 의 약속까지 해놓고도 합류하지 못했다. [1948년 합류] 바로 이어 이 나라의 불교계를 이끌어갈 스님들이 속속 희양산 자락으로 찾아왔다. 향곡.월산.종수 스님에 이어 당시엔 젊은 축에 들었던 도우.보경.혜암.법전.성수 스님 등이 모여 들어 대략 20명 내외가 3년을 같이 살았다.

성철스님의 회고.

"우리가 산에 들어가 첫 대중공사(大衆公事.스님들의 총회)로 뭘 했나 하면, '법당 정리부터 먼저하자' 이거야.

세상에 법당 정리를 하다니 그기 무신 소리인가 하면, 그때까지 가만히 보면 간판은 불교라 붙여놓고는 진짜 불교가 아이다 말이야. 칠성단도 있고, 산신각도 있고 온갖 잡신들이 소복이 법당에 들어앉아 있는 거라.

아무리 그래도 법당에 잡신들이 들어앉을 수는 없는 기라. 그러니 법당부터 먼저 정리하자, 결심했제. 그래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 외에는 전부 다 정리했지. 칠성탱화, 산신탱화, 신장탱화 할 것 없이 전부 싹싹 밀어내 버리고 부처님과 부처 제자만 모셨제. "

당시까지만 해도 토속신앙과 불교가 한데 엉켜 구분이 잘 안될 정도였다. 법당의 풍경 역시 그랬는데, 봉암사 결사에서 비로소 요즘 우리나라 조계종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의 법당이 차려진 셈이다.

다음은 불공(佛供).

불공이란 불심을 가진 개인 스스로가 성심껏 기도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스님들이 목탁 치며 축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성철 스님의 말.

"꼭 부처님께 정성 드리고 싶은 신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지가 알아 물자를 갖다놓고 절하라 그 말이라. 우리 같은 중이 중간에서 삯꾼 노릇은 안 한다 말이제. 그래 하기로 마음 먹고 신도들에게도 알아서 절하라고 시켜놓으니, 불공 드려달라는 사람이 그만 싹 다 떨어져 버리는 거라. "

당시 절에는 '칠성기도' 라 하여 소원을 비는 불공이 많았는데, 봉암사에선 스님들이 목탁 치며 축원을 안 해 주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 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가천도(靈駕薦度.넋을 인도하는 제례)도 문제가 됐다.

"부처님 말씀에 누가 죽으면 49재를 지내는데, 경전을 읽어주라고 했지 북 두드리고 바라춤 추라는 말은 없거든. 그런데 우리가 봉암사에 들어가니 마침 49재 하는 사람이 있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경은 읽어 주겠지만 그 이외에는 해 줄 수 없소' 하니, 그 사람이 '그러면 안할랍니다' 면서 '그런데 재(齋)도 안하면 스님들은 뭘 먹고 어떻게 살지요' 라고 하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산에 가면 솔잎 꽉 찼고 개울에 물 출출 흘러내리고 있고 하니, 우리 사는 것 걱정하지 마시오' 하고 돌려 보냈제. "

간단히 말해 당시까지 스님들이 먹고 살던 방편이었던 모든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대신 부처님이 가르친 호구지책, 즉 탁발(托鉢)을 해서 최소한의 식량을 구하기로 했다.

이어 가사.장삼.바리때 등도 모두 바로잡을 대상들이었다.

"부처님 법에 바리때는 와철(瓦鐵)이니, 쇠로 하든지 질그릇으로 해야 되는 거라. 나무로 된 바루는 안되지. 가사.장삼도 비단으로 못하게 가르쳤는데, 당시에 보면 전부 비단으로 해입어. 색깔도 괴색(壞色)을 해야 되는데 전부 벌겋게 해가지고…, 전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 그래서 비단으로 된 가사.장삼, 그리고 나무바리때까지 싹 다 모아가지고 탕탕 부수고 칼로 싹싹 잘라 마당에 내놓고는 내 손으로 불 싹 다 질러뿌렀제. "

봉암사 결사는 이처럼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는 성철 스님과 도반들의 뜨거운 구도열로 출발했다.

성철스님의 일화를 통해 바른 신앙인이 되기 위해 바른 것을 쫓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쫓아야 하는 바른 것은 신의 글인 경전이다. 마치 자기의 생각이, 경전을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한 것은 비진리 임에도 진리라고 외치는 이들이 되지 말고 세상의 목자들, 스님들, 신부님들, 이외 종교지도자들과 신앙인들 모두가 다 가르침을 깨닫고 가르침대로 행해야 할 것이다.

하늘의 약속대로 택함을 받은 사람만이 온전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경주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